비리의 실체가 궁금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검찰의 5공 비리 수사에 있어 구속자수가 얼마나 되고 누가 구속되었느냐 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의혹과 원성의 대상이 돼 온 5공 비리의 구조적 실체를 국민 앞에 밝히고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세동씨의 구속으로 사실상 종결된 검찰의 5공 수사 결과는 5공 비리에 대한 의혹이나 실체의 윤곽을 제대로 해소하거나 드러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로 미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검찰로서는 나름대로 방대한 규모의 5공 비리 수사전담반을 만들어 집중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5공의 권력작용에 의한 비리의 구조나 전모를 파악,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담반이 수사에 착수한 후 장세동·이학봉씨 등 소위 5공 핵심인물에 해당하는 두 사람을 포함하여 모두 9명을 구속했지만 의혹규명이나 비리의 구조를 파 헤 쳤 다기보다는 대부분 개인비리를 들춰내는데 치중했다.
그 결과 가령 부실기업 정리에 따른 의혹이나 골프장허가와 관련한 의혹, 국내외의 어딘가에 은닉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씨 친·인척의 재산에 관한 의혹, 제2 민 항 허가…등 수 많은 의혹이 검찰수사가 끝나고도 여전히 궁금증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개인비리를 뒤져 신병처리를 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비리나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해 관련자를 구속하고도 의혹은 의혹대로 남게 된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검찰수사가 이런 미진한 점을 남긴 것은 수사에 부닥친 정치적 벽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정사안의 특정인물을 여론무마용으로 구속함으로써 여권이나 검찰의 의지를 과시하자는 정치적 고려에 수사를 종속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 보니 구속대상 인물이 사전에 정치적으로 결정돼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심지어 특정인의구속이 정치적 흥정에 의해 좌우되는 듯한 추측까지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특정인의 구속여부로 검찰내부에서도 수뇌부와 소장들간에 불협화가 있었다는 얘기로 능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가령『5공 인물은 치고 6공 인물은 살린다』느니「눈치보기 수사」라는 말 따위가 나오는 까닭이 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수사가 정부·여당이 정한 1월말 종결시한에 지나치게 얽매여 소홀한 점도 있었던 것 같다.
검찰은 스스로의 수사결과가 갖는 이런 문제점을 의식하여 수사를 끝냈다고 그냥 손을 털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의혹해명과 수사결과 보충을 의해 사후적으로 할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우선 의혹해명을 위해 구속자가 있었든 없었든 간에 지금까지 수사한 사안의 모든 내용을 소상하고 정직하게 발표하기 바란다. 그 발표를 통해 5공의 권력작용이 어떠했고, 비리의 구조가 어떤지를 국민이 조금이나마 더 실체를 알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덜 끝낸 부분에 대한 철저한 계속수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도피중인 인물을 이근안 경감처럼 장기간 못 잡거나 필요한 인물을 해외에 있다 하여 언제까지고 소환 수사할 생각조차 않는다면 다시「봐주기 위한 수사」라는 말이 안 나 올 리가 없다. 이런 계속 수사의 결과 필요하다면 특정사안에 대해서는 수사재개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