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떴다방 배불린 판교 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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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얼마 전 "판교 신도시 분양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인터넷 청약을 전면 실시하고, 처음으로 사이버 견본주택을 도입해 '떴다방' 등 부동산 투기세력이 끼어들 여지를 없앴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24일 판교 분양 현장에 떴다방이 등장했다. 그것도 무주택 서민의 주거복지 향상을 위해 배정된 임대아파트 분양에서다. 높은 분양가(보증금과 월 임대료) 때문에 비판을 받았던 민간 건설 임대아파트는 결국 1692가구 중 867가구가 미계약으로 남았다. 그래서 수도권 무주택자 대상으로 선착순 분양을 했는데도 200여 가구가 남자 이번엔 23, 24일 주택이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 선착순 분양을 실시했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인기 없던 임대아파트를 분양받겠다고 밤샘 줄서기를 하는 사람까지 나타났고, 남은 주택은 이튿날 오전에 동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말만 임대아파트일 뿐 보증금(32평 기준 2억5000만원)과 임대료(월 59만원)는 무주택 서민이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재산이 있는 유주택자에겐 좋은 조건이었다. 좋은 동네의 새 집에서 살다가 10년 뒤 주변 시세의 90%에 분양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착순 분양이었다. 이 때문에 24평형보다 32평형의 인기가 높았다. 선착순 분양 소식에 신난 것은 떴다방이었다. 사람들을 동원해 앞자리를 미리 차지한 떴다방은 100만~400만원에 자리표를 팔았다.

이 같은 일이 빚어진 것은 건설교통부가 판교 신도시를 정책의 실험장으로 생각한 탓이다. '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에 집착한 건교부는 민간 건설업체의 임대아파트 건설을 유도하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민간업체의 보증금과 임대료를 통제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민간업체들은 정부 규제를 피하기 위해 금리가 낮은 국민주택기금을 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보증금과 임대료가 높아졌고, 무주택 서민용이라던 임대아파트가 유주택자의 차지가 된 것이다. 또 이 과정에 떴다방까지 등장한 것이다.

건교부는 뒤늦게 민간 임대주택의 보증금과 임대료 산정방식을 바꾸겠다며 연구용역을 맡기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판교에서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게 2001년 9월인데 그동안 이런 생각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