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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선녀 잃은 슬픔 딛고 나무 중개상으로 컴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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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먹고 삽니다. 좋은 나무를 골라 사고파는 게 일이거든요. 정확히는 나무를 사는 이와 파는 이를 연결해 줍니다. "공원에 심을 소나무 100그루가 필요하다"고 하면, 크기와 모양 등 조건이 맞는 소나무를 키우고 있는 수목원을 찾아 주는 식이지요. 직접 기르지도 않은 나무를 팔아 돈을 벌다니, 대동강 물을 자기 것인 양 판 '봉이 김선달'이 떠오른다고요?

그런데 정작 이 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모르시는 말씀"이랍니다. 남의 나무로 장사를 하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김선달'보다는 '나무꾼'에 가깝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찾아 2000~3000km를 달려가는 것은 기본. 전국의 산과 밭을 헤매고, 직접 삽을 들고 나서기도 해야 합니다. 거래가 다 성사된 나무를 산불로 홀랑 잃기도 하고, 가짜 나무주인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부지기수. 나무에 울고, 나무에 웃고, 앞으로도 나무로 살아갈 거랍니다. 이 두 남자의 나무 이야기, 한번 들어볼까요.

글=신은진 기자 <nadi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대한민국 나무는 몽땅 우리 손을 거치게 될 것"

채일 사장

임현택 상무

포장마차에 나란히 앉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온종일 발로 뛴 하루, 다리가 욱신거리고 입 안이 타들어 간다. 한 사람은 고객이 원하는 나무를 찾아 강원도로 전라도로 차를 몰았고, 다른 한 사람은 은행.캐피털사와 사채시장까지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두 사람이 모은 돈은 겨우 소주 몇 잔 걸칠 정도. 꼼장어 한 마리 더 시킬 돈도 없다. 퇴직금을 쏟아 붓고 각자 한도까지 대출을 받아 꾸려 가는 사업이다. 신용카드 10여 장을 돌려 막아야 직원들에게 겨우 월급을 줄 수 있다. 아내에게 예전의 3분의 1도 안 되는 돈을 생활비로 갖다 준다. 멀쩡한 회사 때려 치우고 무슨 고생이냐는 소리를 듣고 다닌다는 걸 서로 알고 있다. "형." 소주잔을 채우며 '사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 잘하고 있는 거예요?" 잔을 받은 '영업상무'는 단숨에 소주를 털어 넣는다. 초조하기는 그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기다려 봐라, 대한민국 나무란 나무는 다 우리 손을 거치게 될 거다." 수목유통 전문업체 ㈜수프로의 채일(37) 사장과 임현택(40) 영업상무. 6년 전 두 사람이 처음 '나무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이야기다.

폼 나게

시작한 '나무 벤'처'는

6개월 만에 쪽박을 찼다

아이디어 하나만 갖고 시작했다. 건설회사 직원이던 친구 하나가 "공사 현장에 필요한 나무 구하기가 워낙 힘들다"고 운을 뗐다. 조경수 시장은 연간 7000억원 이상의 큰 규모지만 체계적인 유통망이 없다. 원하는 나무를 제때에 찾기도, 사기도 힘들다. 살아 있는 식물은 검역 과정이 까다로워 수입도 어려운 실정. 그래서 완공을 앞두고 조경수가 없어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소규모로 흩어져 있는 국내의 수목 생산지를 수요자들과 연결해 주는 틈새시장을 만들면 승산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삼성.현대 등 대기업 출신 6명이 알음알음으로 모였다. 한참 벤처 바람이 불던 때였다. "처음엔 인터넷 사업으로 시작했어요. 수요자와 공급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해 거래하게 하고 수수료를 받는 일종의 '나무 옥션'으로 만들려고 했죠." 창립멤버 6명이 퇴직금을 모아 만든 '폼 나는 벤처'는 6개월 만에 쪽박을 찼다. 채일 사장은 "전혀 시장을 모르고 '무대포'로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던 시장에서 온라인 거래는 '별나라 이야기'였다. 당시만 해도 농촌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수요자들도 초짜가 분명한 중개자의 소개만 믿고 나무를 사들일 수는 없다 했다. 초기 자본금의 절반을 까먹었다. 거래 문의도 더 이상 들어오지 않자, 창립멤버들이 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채일씨와 임현택씨 단둘만 남았다. "이왕 시작한 것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거든요. 나무 시장이 점점 커질 수 밖에 없다는 확신도 있었고." 친환경 시대에 걸맞게 아파트 단지를 만들 때도 어떤 나무를 심느냐가 조경의 관건이 되고, 서울숲과 청계천 복원 등 대규모 사업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방법이 틀렸을 뿐 방향은 맞다"는 판단이었다. 우선 출발선부터 다시 밟자고 의기투합했다.

할부로

구입한 1t 트럭으로

1년 동안 10만㎞ 발품

1t트럭부터 샀다. 36개월 할부로 산 사업 밑천이었다. 나무를 찾아 직접 전국 각지를 다닐 작정을 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사업 영역을 바꾼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6개월간의 시행착오에서 '정보를 모으려면 발품을 팔아라'는 교훈을 얻은 거죠." 트럭은 1년 만에 10만㎞ 이상을 달렸다. 수요자가 원하는 나무 조건을 꼼꼼히 듣고 적당한 나무를 찾아 전국을 다녔다. 보통 1억원 규모의 조경공사에 들어가는 나무 종류는 넉넉잡아 80~100가지. '전라도에서 철쭉나무 100그루, 제주도에서 소나무 10그루 '하는 식으로 팔도의 나무를 조금씩 모아 올 수밖에 없다. 그것도 같은 규격과 모양을 맞춰야 하니 정확한 정보가 절실했다. 어디에 무슨 나무가 있더라는 말만 듣고 온 산을 헤매기도 여러 번. 길을 가다 눈에 띄는 나무가 있으면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한참 동안 밤낮이 따로 없는 생활을 했다. "지금 다시 하라 그러면 절대 못한다"며 혀를 내두른다. 발주처에서는 대부분 조경공사가 시작되는 새벽 시간에 필요한 나무를 운반해 달라고 요청한다. 저녁에 산지에서 나무를 싣고 새벽에 도착하도록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것. 길 위에서 생긴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산지를 다니다가 거래처와 저녁 약속이 잡히면 트럭 안에서 양복으로 갈아입곤 했어요. 화려한 호텔로 들어서는 흙투성이 트럭을 보고 벨보이들이 기겁을 하던 모습이 생생하네요." 채일씨가 '무용담'을 꺼내며 웃자 임현택씨도 옛 기억을 더듬는다. "처음으로 성사된 거래가 쥐똥나무 30만원어치였어. 몇 시간을 달려가 나무를 확인하고 동영상도 찍어 고객한테 보냈지. 인부들이 나무를 캐는 동안 새참도 나르고, 직접 삽 들고 작업도 하고. 끝나고 보니 순이익은 딱 3만원 떨어지더라."

사기꾼에

속고 산불에 당하고 …

이 악물고 뿌리 내리다

몸보다 힘든 건 마음이었다. 사업 초기만 해도 나무 거래에는 계약서가 없었다. 알음알음으로 물물교환하듯 사고파는 '좁은 시장'이었던 것. 농가에서는 가격을 낮게 쳐주더라도 아는 사람하고만 거래를 하려 했다. 10년을 자식처럼 돌본 나무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넘길 수 없다는 거였다. 적당한 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방으로 달려가도 안면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가 여러 번. 나무를 가져가고 싶으면 당장 현금으로 값을 치르는 수밖에 없었다.

농민들과 한두 마디 주고 받다 보면 나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도 금세 탄로가 났다. "나무 이름도 제대로 몰라서야 어디 일 같이 하겠느냐"는 소리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 사기도 여러 번 당했다. 토지 주인 따로, 나무 주인 따로인 경우가 많은 탓이다. 등기부등본과 나무 소유주의 이름이 달라 물어보면 "친척 땅에서 나무를 키우는 것"이라 대답한다. 임대차 계약서라도 보여 달라치면 팔지 않겠다고 버럭 화를 내기 일쑤다. 납품 날짜를 맞추느라 어쩔 수 없이 계약금을 건네면 이제껏 나무주인 행세를 하던 사람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정작 나무를 뽑고 있으면 "내 나무에 누가 손을 대느냐"며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타난다. "지난해에는 양양 산불로 나무 6000만원어치를 몽땅 잃어도 본 걸요." 지금은 덤덤하지만, 당시에는 눈앞이 깜깜했다고 채일씨가 웃는다.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틈틈이 수목도감을 펼쳐 공부를 했다. 이제는 지나는 길가의 나무를 보면 어떤 종인지, 어떤 급으로 팔릴지, 앞으로 어떻게 길러야 할지 떠오르는 수준. 나무를 팔지 않겠다는 농장주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믿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나무주인 행세를 하는 사기꾼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농장과 수요자들에게 돌렸다. 계약서를 쓰도록 농민들을 설득하고, 거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수요가 많은 나무를 기르도록 조언도 하고 버려진 나무를 무료로 분양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수프로'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믿고 거래를 맡기는 농가와 조경업체가 늘어갔다.

나이테처럼

가치를 쌓아 가는

나무 같은 회사가 목표


"이제는 우리가 나무 정보를 구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 정보가 우리에게 밀려 들어오는 단계"라고 임현택씨는 설명한다. 6년 동안 발로 뛰어 얻은 정보를 하나하나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왔다. 풀에서 나무까지,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적인 수목 분포 현황과 수종.수량.위치와 가격 정보가 모였다. "산림청에도 없는 데이터다. 수프로가 가진 상품은 바로 이 정보력"이라며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덕분에 굵직굵직한 사업에서 나무 거래를 전담하게 됐다. 뚝섬 서울숲 조성에 참여하고 청계천 복원사업 구간에 가로수를 공급했다. 최근에는 북한 개성공단에 심을 가로수 공급도 맡았다. 내년 봄까지 북한으로 1만7000여 주의 나무를 골라 보내게 된단다. 회사도 몰라보게 성장했다. 직원이 19명으로 늘어났고 올해 예상 매출액은 150억원. 9억원이던 2000년보다 무려 16배가 늘어난 수치다.

앞으로 남은 목표는 나무처럼 '나이가 들수록 가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란다. "지금은 조경수목 유통에 머물고 있지만, 앞으로 낙후된 나무 시장과 거래 방식을 완전히 바꿀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천차만별인 나무 규격과 모양을 표준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자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조경수 양묘를 시작했다. 특수 용기에 묘목을 심어 동일한 환경에서 같은 조건의 나무를 재배하는 것. 채일씨는 "농민들에게 재배 표준화 기술을 이전하면 나무 시장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계획은 수프로 이름으로 수목원을 여는 것이다. 일명 '반품 수목원'이란다. 건설 현장에 가져갔다가 '요구한 것보다 30㎝가 작다''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당한 '반품 나무'들로 꾸밀 계획이다. "지급도 끝난 상황이라 되돌아오면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키워야 했어요. 빌린 땅에 반품 나무들을 심은 지 6년, 이제 한 1억원어치쯤 되는 것 같네요. 직원들이 우스개로 '반품 수목원이라도 차릴 거냐'고 물었는데, 그거 좋은 생각이다 싶었죠."

채일씨와 임현택씨는 "나무가 가져온 가장 큰 행운은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은 진실합니다. 나무는 아이와 같아요. 오래도록 정성을 기울여야 좋은 나무가 나오지요. 나무를 사랑하는 이들과 매일 나무 냄새를 맡으며 일하는 것,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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