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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와 라이언의 물러날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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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니키 헤일리 미국 유엔 대사의 지난 9일 사임 발표는 트럼프 시대 인사풍경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옆자리에 앉아 기자들과 한 대담 형식의 발표였다. “2020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대통령의 재선을 돕겠다”며 덕담도 주고받았다. 상관 격인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대북 외교 해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가 “시간 낭비 말라”는 면박만 받고 새벽 댓바람에 트윗 해고를 당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임기 없는 유엔 대사직을 굳이 2년 임기제로 하겠다며 실제 사임 시점보다 두 달여 앞서 발표한 것부터 이례적이다. 민주당에 하원을 뺏길 위기인 중간선거를 딱 4주 앞둔 날이다. 이 때문에 실세 이방카에게 자리를 비워준 것이라는 등 각종 억측을 낳았다. 대통령이 선거 직후 눈엣가시인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해임하고, 충성파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임명한 뒤 헤일리가 잔여 임기 의원이 되는 돌려막기 인사를 대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것도 대통령이나 그레이엄 등 당사자들이 부인해 깊은 배경은 두고 봐야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헤일리 본인이 한 주 전 대통령에게 작성한 사퇴서를 보면 할 일을 다 하고 돌아가겠다는 당당한 사퇴였다. 10월 3일자 사표에 “임기제의 강력한 지지자로서, 나는 공직의 순환이 공공의 이익이 될 것으로 오랫동안 믿어 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원, 주지사에 이어 유엔 대사직까지 14년 연속 공직에 머물렀다. 기업인 출신인 당신은 공직에서 민간 부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퇴진(step down)’이 아니라 ‘승진(step up)’이란 내 생각을 이해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었다.

미 의회와 공화당 최고지도자로서 일찌감치 정계 은퇴를 선언한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비슷하다. “세 아이가 나를 더는 ‘주말 아빠’로 기억하게 둘 수 없다”면서 10선 의원과 하원의장직을 연말까지의 임기를 끝으로 내려놨다. 처음엔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의 의장직 승계 얘기도 나왔지만 의장실에서 숙식하며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쑥 들어갔다. 1998년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의원이 됐고, 140년 만에 최연소 하원의장이 된 라이언은 헤일리와 함께 공화당의 젊은 지도자로 꼽힌다. 지난 8일 내셔널프레스클럽 행사에서 정치를 완전히 그만두느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란 말은 절대 해선 안 된다.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찬찬히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인사는 우리와 닮았고 사달이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공직을 선거 승리의 전리품 취급하는 것을 막기 어려워서다. 그래서 두 사람이 보인 공직자의 사퇴권이 더 눈에 들어왔다.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