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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서울 있으니 … 장관·국장은 여의도, 사무관 세종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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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회 분원을 세종시로 

국정감사 첫날인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복도에 세종시에서 올라온 공무원들이 자료준비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는 세종청사에 있는 문체·농림·산자·복지부 국감이 열렸다. [변선구 기자]

국정감사 첫날인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복도에 세종시에서 올라온 공무원들이 자료준비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는 세종청사에 있는 문체·농림·산자·복지부 국감이 열렸다. [변선구 기자]

‘장관은 여의도, 국·과장은 고속도로, 사무관은 세종시.’ 대한민국 행정부의 모습이다. ‘따로국밥 정부’라 할만하다. 장·차관, 실·국장은 대부분 서울에 있다. 정부 세종청사에서는 과장이 왕이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마주칠 일이 드물다. 사무관들은 “세종청사에 있으면 마치 유학 온 느낌”이라고 말한다.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정부부처 ‘두 살림’ 효율성 떨어져 #세종서 장관회의 있는 월요일엔 #간부 결재 받으려 긴 줄 진풍경 #국감 땐 아예 여의도 찜질방 생활 #“국회 분원 두면 업무 집중력 생겨”

과장들이 어깨를 펴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행정 효율성을 생각하면 걱정이다. 아무리 교통이 편리한 시대라고 하나 장관은 서울, 국·과장은 고속도로, 사무관은 세종시에 있는 배치로는 업무가 원활할 수 없다. 현장 기자들이 보고 들은 세종정부청사 근무 공무원들의 실태를 정리했다.

#월요일만 붐비는 세종시

고참 과장 이상 공무원은 대체로 ‘기러기’다. 서울에 집이 있다. ‘공무원 생활이 몇 년 남지 않았는데 굳이 세종시에 집을 사서 내려와야 하느냐’고 한다. 기획재정부의 경우 경제정책국·정책조정국·공공정책국 국장은 일주일에 한 번 세종시에 머무르기 힘들다. 김동연 부총리가 있는 정부서울청사 10층 근처에는 평소에도 기획재정부 국·과장이 몰려 있다. 정부가 마련해준 공간은 좁은데 다른 부처에서 찾아온 공무원들마저 많아 차관들도 있을 데가 없을 지경이다.

국토교통부는 월요일 장관 주재 간부회의가 있다. 이 바람에 이날만은 대부분의 간부가 세종청사로 출근한다. 장관 주재 회의가 끝나면 실·국장 주재 회의들이 이어진다. 공무원들은 이날 밀린 결재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기자들도 이날 아니면 취재가 어렵다. 화요일부터는 거의 자리를 지키는 간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화·수·목·금으로 가면서 더 심해진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주요 보직 간부가 대부분 서울에 있다.

#일상이 된 카카오톡 보고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의 국장 A 씨는 “국회 일정 때문에 대부분 서울에 있다 보니 보고서를 카카오톡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자리에 앉아 옆에 불러 놓고 보고서를 고쳐 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조언도 해줄 텐데 요즘은 그냥 카카오톡으로 간단히 몇 자 적어 보내거나, 전화로 조금 지시하고 만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의 B 국장도 “국·과장이 자리를 비우다 보니 선배들의 업무 노하우와 현장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득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도제(徒弟)식 지도는 옛날의 추억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A 국장은 보고서 작성 능력이 떨어지고, 부실해지는 원인이 여기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놓은 공식 보고서가 맞춤법이 틀리고, 알맹이가 없다고 지적받는 일도 생긴다.

전직 경제부처 장관 C 씨는 “과거에는 일과가 끝난 뒤 맥주 한 잔을 놓고 치열하게 현안을 토론하며 아이디어와 경험을 공유했다. 그러나 요즘은 간부와 부하 공무원 사이에 제대로 토론을 벌일 시간도 없다고 한다”고 개탄했다. 경험을 전수하지도 못하고, 정책 보고서의 수준을 높이기도 어려운 이유다.

카카오톡을 통한 보고가 보안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간부 얼굴을 보기 어려워 카카오톡을 이용한 업무 처리가 불가피하다. 지난 연말 암호화폐 대책과 관련한 보도자료 유출 파문도 카카오톡을 이용하다 발생했다. 공무원용 보안 메신저 ‘바로톡’을 쓰라고 하지만 불편해 사용하는 공무원이 많지 않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한 화상회의시스템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 환경부의 D 실장은 “서울에 올 일이 많다 보니 서울사무소에서 국·과장들과 화상회의를 가끔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기획재정부의 E 사무관은 “아무래도 대면 보고할 때보다는 소통이 원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찜질방 전전하는 공무원

국회 국정감사가 열리는 요즘은 KTX에서, 지하철에서, 국회 근처에서 백팩을 메고 서둘러가는 공무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공무원들은 국회 정기국회 때 줄곧 대기 상태다. 기획예산처 예산실 직원은 밤늦게까지 대기하는 일이 많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공무원들은 여의도 근처 찜질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서울 출장이 워낙 많다 보니 기강 해이도 심각한 문제다. ‘자리를 비우면 이동 중이라고 생각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서울 출장 보고를 하고 출근하지 않은 공무원이 감사에서 적발된 일도 있다. 간부가 서울을 가기 위해 자리를 뜨면 다른 직원들의 근무 기강도 느슨해진다. “1급이 서울로 가기 위해 1시에 나가면, 2급은 2시, 3급은 3시, …7급은 7시에 퇴근한다”는 농담까지 나돈다고 한다.

#1만원의 행복

금요일이면 KTX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세종시와 오송역을 오가는 간선급행버스(BRT)는 퇴근 시간만 되면 너무 붐벼서 차를 몇 대 보내고서야 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통근 버스는 일반 버스라 불편하다. 이 때문에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2시간 일찍 퇴근해 요금이 1만1000원인 우등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기도 한다. 이 작은 편리함을 공무원들은 ‘만원의 행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젊은 과장과 사무관들은 세종시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세종시에 사는 공무원들은 서울에서 약속 잡기를 꺼린다. 약속이 있어 서울에 오더라도 기차 시간에 맞춰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공무원들이 연구소나 민간 부문 전문가들과 소통이 어려워지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공무원이 갈라파고스에 고립되는 것은 위험한 현상이다.

#국회 세종 분원 설치해야

국회 세종 분원 설치에 대해서는 찬성 목소리가 많다. 환경부의 F 실장은 “세종시에 국회 분원이 생기면 아무래도 동선이 줄어들 테니까 업무 집중도나 정책의 질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의 G 국장은 부처가 세종시로 옮길 때 같이 이사했다. 당시 세종시에 집이 없어 대전에서 2년간 살다 세종시에 입주했다. 아이들을 두 번이나 전학을 시켜야 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세금을 가지고 일하는데 시간 효율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국회 분원을 설치해서라도 이동 시간을 줄이면 줄일수록 업무 집중력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김진국 칼럼니스트, 정재홍 기자,
김지수·우아정 인턴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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