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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남편의 손찌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정초인 지난 4일 오후 서울여의도동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사무실.
『남편이 술 마시고 들어오면 마구 때려요. 이유도 없어요. 지난 연말에는 밤12시에 들어와 공연한 행패 끝에 골프채로 때려 오른손목이 부러졌어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서울 불광동 B아파트 주부 김은숙씨(35·가명)는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 상담요원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16년 전 연애결혼 한 김씨는 최근 남편의 성격이 점차 거칠어지면서 손찌검까지 늘어나 『무서워 살수 없다』고 흐느꼈다.
부부간의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지면서 한 가정을 파괴해 가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의 폭력은 최근 인구증가, 성 윤리 타락, 이기주의, 비뚤어진 결혼관 등 우리사회의 병폐 만연으로 인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86년 8월부터 87년 12월말까지 이혼을 원하는 7천7백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중 30.2%인 1천9백여 명이「폭행」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한해동안 10만9천여 건의 상담을 해 온「사랑의 전화」경우에도 상담주부 20명당 한 명 꼴로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문제 전문가들은 남편이 심한 구타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가정을 전국 가구의 4%정도로 추산. 우리나라 8백만 쌍의 부부 중 32만 명의 아내가 심한 구타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랑의 전화」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정폭력 중 부부간 폭력은 주로 남편의 성격 난 폭과 주벽·의처증 때문이고 돈 문제와 열등감 또는 불복종, 성생활의 불만 등도 복합돼 일어나며 습관화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 가운데 25.47%는 흉기까지 사용하거나 담뱃불로 지지고 옷을 벗기고 때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
더우기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은 자녀들까지 마구 때려 아동학대를 일삼고 이로 인해 자녀들은 또다시「폭력의 모방」을 하게 돼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아내 구타자의 4분의3이 폭력가정에서 자랐고 절반 이상은 자신도 부모로부터 구타당하면서 자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핵가족·고 학력자·연애결혼 부부·결혼 10년 전후의 30대 부부에게서 가정폭력문제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사회발전에 따라 오히려 가정폭력이 늘어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여성의 전화」조사결과).
가정은 사회의 핵심적인 공동체로 사회생활의 축소판이자 교육장이다. 가정에서 대화와 타협대신 폭력이 난무한다면 민주사회·건강한 사회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가정문제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여성의 전화」상담부장 박형옥씨(50)는 『가정폭력은 본인의 내부갈등이 사회에 건강하게 표현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여성대부분이 남편의 폭력초기에「어쩌다 한번이겠지」라는 생각과 경제적 독립의 어려움, 자녀문제 등에 대한 염려 등으로 자칫 남편의 폭력을 습관화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 여성자신들의 노력을 촉구하는 상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이란 책을 펴낸 한양대 의대 김광일 교수(신경정신과)는『가정에서의 폭력은 사회폭력의 온상역할을 한다』며『반대로 의롭고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야 가정폭력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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