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정동영 '정계개편' 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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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왼쪽)이 24일 서울 영등포동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본부 회의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를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4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박성효 대전시장 후보 사무실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24일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론'을 공식화했다. '민주당과의 연합'이라는 틀을 제시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는 '선(先)자강론'이었다. 당을 튼튼하게 하는 게 우선이며 외부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그가 이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자신의 최대 경쟁자인 고건 전 총리에겐 선거 후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그는 '선거 전 협조'를 강력하게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정 의장의 입장 변화는 당의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현재 정국은 거대한 한나라당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민주.중도개혁 세력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민노당 등으로 분산돼 있는 구도"라고 했다. 수도권의 다른 의원은 "개혁세력 결집은 사실상 선거 이후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외통수라고 많은 의원이 생각한다"고 했다. 이미 여권에선 김근태 최고위원 측의 '범민주개혁세력 연대론', 염동연 등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과의 합당론', 안영근 의원 등의 '고 전 총리 영입론' 등이 불거져 있다. 정 의장이 이 같은 당내 기류를 '선거 후 대연합론'으로 공식화했다는 것이다.

정 의장의 발언엔 선거 후 벌어질 책임론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실려 있기도 하다. 지방선거를 주도한 그가 선거 후 당의 목표를 '민주개혁세력의 결집'으로 이끌면서 위기관리의 리더십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 의장 발언에 강력하게 반박했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없어질 당과의 통합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한나라당에선 "과연 여당이 정계개편의 축이 될 만한 여력이 있는가"라는 말이 나왔다. 그의 발언이 실제적인 힘을 동반할지는 미지수다. 정 의장 자신이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관계다. 지역감정 해소가 소신인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민주당 합당론 등을 어떻게 바라볼지가 정국 흐름의 키가 됐다.

채병건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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