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베르크·스트라빈스키·메시앙…20C 실내악 걸작 3곡 한 자리에서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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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14년과 1939년에 발발한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음악계의 기반 시설이 거의 초토화됐다.

수많은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 폭격으로 부서졌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무대를 잃고 뿔뿔히 흩어졌다. 따라서 작곡가들은 소규모 앙상블을 위한 곡을 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말러의'천인 교향곡'(1906년)에 이르기까지 팽창 일로를 걷던 관현악이 실내악에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그래서 20세기를 대표하는 명곡은 대부분 실내악이다. 연주자와 무대를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절박한 상황 때문이다. 오히려 군더더기 없는 음악적 진수를 실내 앙상블에 담아낼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는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음악감독 박은희)이 20세기 음악사의 걸작 3편을 연주한다. 쇤베르크(사진(上))의'달에 홀린 피에로'(1912년), 스트라빈스키(中)의'병사의 이야기'(1918년), 메시앙(下)의'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1941년)등이다. 극단적인 대조와 촌철살인의 풍자가 번득이는 작품들이다. 작곡자 자신이 지휘자 또는 연주자로 초연에 직접 참가한 것도 특징이다.

이들 세 작품은 연주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같은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윤성(창원시향 상임 지휘자)씨가 지휘봉을 잡고 '병사의 이야기'에서는 피아니스트 박은희씨가 내레이터를 맡는다. 박은희 음악감독은 "세 작품 모두 각 악기 고유의 음색과 특성을 최대한 발휘한 20세기 음악의 고전"이라며 "얼마든지 쉽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6월 1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01-8477.

◆달에 홀린 피에로=무조(無調)음악의 효시. 소프라노와 클라리넷.플루트.바이올린.비올라.첼로.피아노 등 7명의 연주자를 위한'멜로 드라마'다. 21편의 시에 곡을 붙였고 초연을 앞두고 무려 40회의 리허설을 거쳤다. 피에로 분장을 한 소프라노가 노래도 낭송도 아닌 선율을 읊어댄다. 한 곡당 평균 연주시간은 1분30초. 악기 편성이나 길이에서 농축된 악상을 느낄 수 있다.

◆병사의 이야기=발레음악의 콘서트 버전. 클라리넷.바순.트럼펫.트럼본.바이올린.더블베이스.타악기 등 7개의 악기로 관현악 못지 않는 악상을 압축해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기는 병사(바이올린)의 이야기다. 재즈의 어법을 받아들인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작곡해 동료 포로들 앞에서 초연했다. 신약성서 요한계시록 10장에서 영감을 받은 곡으로 바이올린.클라리넷.첼로.피아노를 위한 4중주다. 언제 죽음이 닥칠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에서 빚어낸 신비로운 화음이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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