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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동맹과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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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 정부는 걸프전(1991년) 때 미국 측에 130억 달러를 지원했으나 참전은 하지 않았다. 94년 북핵 위기 때 미.일은 일본의 방위와 직결된 상황에서조차 효율적인 협력을 하지 못했다. 미.일동맹의 방향과 목표는 소련 붕괴 뒤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다 96년에야 빌 클린턴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가 재설정했다.

2000년 미국 대선 직전에 리처드 아미티지는 초당적인 연구 모임을 하나 이끌었다. 그는 보고서를 내고 ▶미.일동맹의 강화▶일본 헌법의 집단적 자위권 조항 폐기▶유럽에서 영국이 하는 것처럼 일본을 아시아의 핵심 동맹으로 만들기 위한 다각 협력 강화 등을 권고했다. 권고 사항들은 2001년 들어선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핵심적인 대일 정책이 됐다.

9.11 테러 이후 일본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에 연료를 공급하고, 이라크 재건 사업에 자위대를 파견하며 미국의 기대에 부응했다. 일부 한국인은 한.미동맹이 약화하는 와중에 미.일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일본이 독도 문제에서 과거보다 더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또 다른 한.일 역사문제로 연계시킨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두 동맹국 간의 갈등 상황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문제를 놓고 더 자주 3자 대화를 주선해 긴장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인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감정을 토해내면서까지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가 미국에도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소수의 일본 우익 인사는 제2차 세계대전이 제국주의 열강의 충돌일 뿐이며, 종전으로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승자의 정의'만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헨리 하이드 미 하원 의원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효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런 역사해석에 반대하는 성명을 몇 차례 냈다.

아시아 지역에서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최근 부상 중인 중국의 지역 내 영향력 확대를 어느 정도 막아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중국과 미.일의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를 감안하면 이런 계산이 아시아에서 '신 냉전' 방식의 봉쇄 전략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미국으로부터 독자적 입지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한국은 동북아에서 '힘의 균형자 역할'을 희망한다.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 정책 틀 안에서 한국이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한.미동맹 강화다.

미국은 일본이 아시아의 이웃들과 잘 지내지 못해 미국의 이익에 위협을 주는 상황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고립되면 미국의 이익에도 맞지 않다. 역내에서 일본이 초래한 갈등 상황에 미국이 말려들 가능성은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역사문제를 잘 처리하도록 미국이 공개적으로 압력을 넣는 것은 부작용만 낳을 것이다.

미.일동맹이 더 공고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당혹해 하는 한국인의 심리는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미.일동맹 강화, 미래 한.미관계의 불확실성, 동북아의 새로운 경쟁관계 조성에 대한 한국인의 우려를 염두에 둬야 한다. 동시에 한국인도 미.일동맹의 약화가 한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서도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

정리=장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