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진핑 평양행” 신냉전 서막이냐 동북아 신질서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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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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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얼굴)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이 중국의 대미 강경노선 전환을 상징하는 새로운 냉전의 서막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9일 시 주석이 ‘조만간’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날 국무회의 발언을 보도하며 “시 주석의 평양 방문 결정은 미·중 두 나라의 갈등이 무역 바깥으로 확대된 시점에서 중국이 대(對)미국 정책을 보다 강경한 입장으로 전환했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 열병식에 불참하면서까지 미국에 성의를 보였지만 이제는 개의치 않을 전망이라는 취지다. 장바오후이(張泊匯) 홍콩 링난(嶺南)대 교수는 “중국이 어떻게 하는가에 관계없이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국 봉쇄정책을 추구하자 중국이 다른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은 미국의 반발을 무시하고 한반도에 더 큰 영향력 경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과의 관계개선은 베이징에 대미 교섭력을 높여 준다”며 “다가오는 한반도 평화조약에 좌석을 예약하려는 목적”이라고 평가했다. 시 주석의 평양행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불거진 ‘신냉전’에서 반격을 노리는 중국의 카드로 떠올랐다는 시각이다.

홍콩 언론, 문 대통령 발언 보도하며 #“방북, 중국의 대미 강경 전환 신호” #일각선 “비핵화 촉진 위한 평양행” #냉전 구도 해체 과정으로 보기도

시 주석의 평양행에 대해 중국 당국은 말을 아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북·중은 우호 방문의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면서도 “문 대통령의 발언에 현재 제공할 소식은 없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2008년 8월 국가부주석 취임 후 첫 순방국으로 북한을 방문했지만 2012년 집권한 뒤 지금까지 평양을 찾지 않았다. 단 지난 3월 베이징을 방문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방북 초청에는 응한 상태다.

반면에 중국 매체들은 미국을 향해 ‘신냉전’ 보도를 쏟아냈다. 인민일보 해외판은 9일 1면 논평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대중 정책 연설은 그릇되고 부정적 언사로 가득 찼다”며 “세계 여론이 미·중 ‘냉전’의 도래를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펜스 부통령은 지난 4일 한 연설에서 “중국은 다른 미국 대통령을 원한다”며 중국의 미국 선거 개입 등을 주장했다. 중국 국제전문지 ‘참고소식(參考消息)’도 이날 “펜스 부통령의 연설은 세계 경제 1, 2위 국가가 ‘신냉전’에 진입했다는 공식 선언”이라며 1946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철의 장막’ 연설에 비유했다.

악화일로의 미·중 관계는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8일 베이징 방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폼페이오 장관은 반나절 동안 베이징에 머물며 왕이(王毅) 국무위원 등을 만나 설전을 벌였을 뿐 시 주석은 만나지 못했다. 시 주석 예방은 막판에 취소됐다고 한다. 북·중 채널은 되살아났다. 9일 대외경제상을 역임한 무역통인 이용남 북한 내각부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지난 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에 이어 이날 이용남 부총리까지 베이징을 찾은 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의 협상력 강화 전략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시 주석의 방북은 신냉전의 악화라기보다는 오히려 해체에 더 가깝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시 주석의 평양행은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방북”이라며 “과거 한·미·일 대 북·중·러로 대결했던 냉전의 구도가 북한 비핵화를 매개로 해서 역동적으로 해체되는 동북아 신질서 구축 과정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지금 남북은 물론 북미가 대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겠는가”라며 “미·중이 무역전쟁 등으로 충돌하는 것은 맞지만 최소한 한반도에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냉전 잔재가 해체되는 방향을 향해 주변국 모두가 가고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시진핑의 방북만 있는 게 아니라 향후 아베의 방북도 있을 수 있다”며 “한·중, 한·러에 이어 북한 비핵화를 통해 북·미, 북·일 관계가 정상화하면 그게 바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냉전 해체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서울=권유진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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