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황은 어렵지만 몽골기병 깃발 안 내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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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23일 정읍시 옛 구청광장에서 지원유세를 마친 뒤 유권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얼굴은 요즘 축이 많이 났다. 착잡함도 묻어 있고 피곤함도 배어난다. 한때 '꽃미남' 소릴 듣던 그 얼굴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2월 18일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뒤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몽골기병론'의 기치 아래 고된 지방 일정은 물론 북한 개성공단 방문까지 거침없이 소화했다. 휴일이 하루 끼어 있긴 했다. 그러나 그날은 공교롭게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한.일 4강전이 열렸다. 정 의장은 잠실야구장에서 응원하느라 단 하루의 휴일마저 헌납했다. 100일 가까이 '죽을 힘을 다해 달려온' 것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주어진 중간 성적표는 초라하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16개 광역단체장 중 열린우리당이 앞서 나가는 곳은 전북과 대전 두 곳뿐이다. 20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테러 사건 이후엔 대전의 우위마저 흔들린다는 조사가 나오고 있다. 추격세를 보이던 광주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기초단체장은 한나라당이 싹쓸이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내에서 정 의장을 겨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는 21일 지도부를 향해 "전당대회 이후 한 게 뭐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의장은 요즘 '반성과 용서'를 입에 달고 다닌다. 지방선거 초기 '지방권력 심판론.교체론'을 내걸고 한나라당을 향해 포문을 열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바짝 몸을 낮췄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는 "한나라당 싹쓸이를 막아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이는 마치 4.15 총선 당시 박 대표를 보는 듯하다. 당시 박 대표는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몰리자 "여당이 200석 넘는 의석을 싹쓸이해 갈 것 같다"며 "제발 그것만은 막아 달라,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었다.

정 의장은 23일 전북지역 유세에 나섰다. 그는 "박 대표에 대한 테러는 박 대표에도, 열린우리당에도 불행한 일"이라며 "솔직히 말해 열린우리당이 더 어려워졌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이 전북만 같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90%가 한나라당 판"이라며 "열린우리당이 온 천지를 한나라당에 내주는 걸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전북은 현재 열린우리당이 유일하게 안정적 우위를 지키고 있는 지역이다. 정 의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에 비해 '온도차'가 느껴졌다고 한다. "여기서라도 힘을 받아야겠다"는 의지도 읽혔다. 그는 "현재 상황이 어렵지만 결코 '몽골기병'의 깃발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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