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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궁만 북적한 면세점···롯데, 5조 팔아 25억 남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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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커 700만 시대, 외면받는 한국 

중국 국경절 기간인 지난 2일 서울의 한 면세점 앞에 늘어선 중국인 관광객. 대부분은 관광객이라기보다 대리구매 목적의 다이궁(보따리상)이다. [연합뉴스]

중국 국경절 기간인 지난 2일 서울의 한 면세점 앞에 늘어선 중국인 관광객. 대부분은 관광객이라기보다 대리구매 목적의 다이궁(보따리상)이다. [연합뉴스]

3일 오전 7시쯤 서울 소공동의 롯데백화점 앞은 중국인들이 타고 온 승합차로 북적거렸다. 인근 신세계 백화점 앞도 지하철 회현역에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수백 명의 중국인이 줄지어 있었다. 오전 9시 면세점이 개장하자마자 백화점 안으로 사라졌던 이들은 20~30분 뒤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나와 어딘가로 바쁘게 사라졌다. 면세점이 있는 시내 백화점 앞에선 흔한 새벽 풍경이 돼 버린 이 장면의 주인공들은 순수 관광객이 아닌 일명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다이궁(代工)이다. 이들은 싸게 산 면세 물품을 자국에서 비싸게 팔아 수익을 남긴다.

쇼핑·호텔업계 유커 감소 직격탄 #면세점, 눈앞 매출 위해 출혈 경쟁 #판매액 늘었지만 이익 99% 감소 #호텔비 50% 내려도 빈방 넘쳐 #“서울 호텔 20% 3년내 문닫을 판”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에 의지해 성장하던 한국의 면세점과 호텔이 위기를 맞고 있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외견상은 증가하고 있다. 유커는 줄었지만 다이궁이 늘어난 덕분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면세점 총 매출은 12조3866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9조1120억원)보다 35.9% 늘었다. 하지만 허울뿐이다. 국내 1위인 롯데면세점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5조4544억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25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이 전년(3301억원)과 비교해 99.3% 급락한 것이다. 면세점 업계 2, 3위인 호텔신라나 신세계도 수치만 조금 다를 뿐 속사정은 비슷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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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이 늘어도 되레 이익이 주는 건 다이궁 유치를 위해 비용을 늘린 것은 물론 마진도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중국 국경절을 앞두고 다이궁들의 구매 액수가 커지자 롯데와 신세계는 다이궁을 더 많이 잡기 위한 ‘쩐의 전쟁’을 벌였다. 평소 30% 수준이던 송객수수료를 한쪽에서 35%까지 올려 다이궁을 끌어가자 다른 쪽에서 수수료를 42%까지 올리며 혈투를 벌인 것이다. 다이궁이 100만원 어치를 구매하면 42만원을 되돌려 주는 식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다이궁이 한 곳으로 쏠리면 다른 곳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치킨 게임”이라며 씁쓸해했다. 송객수수료는 외국인 관광객을 면세점에 데려오는 대가로 여행사나 가이드에게 면세상품 판매액의 일정 부분을 떼주는 돈이다. 면세점 관계자는 “다이궁 탓에 수익성이 나빠지고 특정 상품만 대량 구매해 재고 관리도 힘들지만 당장의 매출 때문에 다이궁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수수료를 두둑이 챙기는 다이궁은 점점 기업화하는 추세다. 중국의 대형업체들은 하청업체를 두고 다이궁을 모집해 한국으로 파견할 정도다.

호텔업계 사정은 더 나쁘다. 서울 명동의 한 비즈니스호텔 관계자는 “3년 전 10만원 넘게 팔던 객실을 6만~7만원에 내놔도 절반도 차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1700여 개 객실)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의 경우 올해 상반기 투숙률은 25~35% 정도에 그쳤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2년 161개였던 서울 시내 호텔은 지난해 399개로 늘었다. 유커가 늘면서 부족해 보였던 호텔은 그러나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후 유커가 썰물 빠지듯 빠지면서 빈 객실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유커를 노리고 홍대·신촌·종로 등에서 추진하던 호텔 건축은 잇따라 용도변경을 추진 중이다. 종로5가역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주차장 부지에 짓던 지상 20층 360실 규모의 호텔은 오피스텔로, 서교동에 신축 중이던 관광호텔은 의료시설로 바뀌었다. 김대용 한국호텔업협회 과장은 “객실료를 3분의1 수준으로 내리는 호텔도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3년 이내에 서울 시내 호텔 20% 정도는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유커가 줄면서 전담 여행사들은 개점휴업 상태다. 3년 전만 해도 160여 개에 달하던 중국 전담 여행사의 대부분이 경영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 단체관광객을 받은 여행사중에서도 수익을 낸 곳은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성화선 기자 s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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