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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평창 온 유커 5887명, 돈 벌러 눌러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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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 700만 시대, 외면받는 한국

서울 시내 한 면세점 풍경. 사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은 줄고 대리구매를 위한 다이공만 늘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면세점 풍경. 사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은 줄고 대리구매를 위한 다이공만 늘었다. [연합뉴스]

중국 하얼빈에서 농사를 짓던 쑹(35)은 지난 2월 평창 겨울올림픽 관광객 신분으로 서울 땅을 밟았다. 그러나 그는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평창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고 브로커가 일러준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숙소로 직행했다. 지금까지 9개월째 불법체류하며 건설 일용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쑹은 “인천공항에서 한 버스에 20명이 탔는데 모두 같은 목적이었다”며 “한국 입국과 취업 대가로 돈 5만 위안(약 800만원)을 브로커에게 줬다”고 말했다. 쑹이 지난달에 23일을 일하고 번 돈은 약 300만원. 중국에서 1년간 농사로 번 돈 1만 위안(약 160만원)의 2배에 가깝다.

올림픽 무비자로 3만 명 입국 #일부 건설현장 직행 불법체류 #중국인 관광, 한한령 이전의 54% #기대 컸던 호텔·면세점 등 울상

정부는 평창올림픽 티켓 구매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중국인에 한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이후 한한령(限韓令)으로 줄어든 유커(중국 단체관광객)를 유치하고, 올림픽 티켓 판매를 늘리기 위한 다목적 카드였다.

2016~2018 방한 중국 관광객 추이, 평창올림픽 전후 외국인 불법체류자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법무부 출입국 통계]

2016~2018 방한 중국 관광객 추이, 평창올림픽 전후 외국인 불법체류자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법무부 출입국 통계]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3월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중 무사증 입국제도를 통해 방한한 중국인은 3만4062명. 이 중 5887명이 쑹처럼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불법체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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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올림픽 무사증 입국이 유커가 늘어나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했지만 그 또한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올해(1~8월) 중국인 관광객은 305만 명으로 한한령 이전인 2016년 같은 기간(560만 명)의 54%에 불과했다. 양무승 한국여행업협회장은 “중국 당국이 상하이 등 6개 시·성에 대해 한한령을 푸는 등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며 “하지만 올해 한국 여행사가 유치한 단체관광객은 8만9000명으로 한한령 전인 2016년의 245만 명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고 말했다.

중국 외 해외 관광객 시장도 신통치 않다. 올해(1~8월) 전체 외국인 관광객은 986만 명으로 유커가 크게 준 지난해(886만 명)보다는 늘었지만 2016년(1147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커가 줄면서 중국 전담 여행사는 물론 면세점이나 호텔 경영도 울상이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경기·인천·부산·제주 200개 호텔의 외국인 비율은 48%로 2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5.4%포인트 감소했다. 시내 면세점은 다이궁(代工·보따리상) 천지가 됐다. 한국 화장품 등을 보따리로 사가는 다이궁에게 의지해 매출은 늘었지만 각종 수수료를 지급하다 보니 영업이익은 줄고 있다.

전문가들은 획기적인 관광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일본도 우리처럼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지만 일본을 찾는 중국인은 늘고 있다. 결국 우리와 일본은 관광 콘텐트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관광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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