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치 증오 마케팅' 없애고 양극화 해소, 공권력 살려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박사모' 회원들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며 22일 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입구에 촛불을 켜고 있다. 박종근 기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문구용 칼(커터.cutter) 테러'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 지충호씨는 실업.가난.복역으로 누적된 반(反)사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를 표출한 대상(여성 정치인 얼굴)과 수법(유세장.커터)이 극단적인 게 문제다. 그래서 온갖 갈등이 증폭될 내년 대선 과정에서 유사한 테러가 재발해 극심한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런 테러가 가능한 우리 사회의 저변(底邊)을 지금부터라도 살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사회학자들은 사회에 증오.대립.해이(解弛)의 풍조가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양극화, 갈등 증폭 구도, 공권력 무력화의 3대 요인이 상호작용으로 테러라는 기형(畸形)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테러가 대상을 안 가리고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들은 경호원 강화 같은 물리적 방법으론 테러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공동체의 따뜻함을 지키는 '공동체 경호'가 3대 요인을 약화시키는 근본적 힘이라고 말한다.

◆ 양극화=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권영준(경희대 교수) 소장은 "양극화가 단순한 빈부격차를 넘어 '상호 손해(negative sum)'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자신은 집 한 채도 없는데 어느 지역 아파트 하나가 수십억원짜리가 돼버린 현실 앞에서 사회에 반감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공격적.파괴적이 되고, 특정 지역.계층은 이에 심리적.경제적 부담을 느껴 서로 손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부유층을 극단적으로 공격했던 범죄의 기억이 있다. 1993~94년 '지존파'는 살해 대상을 고르려고 백화점 고객 명단을 입수했다. 96년 '막가파'는 외제차를 타던 여성을 납치해 생매장했다. 권 교수는 "무차별 방화나 테러 같은 범죄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갈등 증폭 구도=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교수는 "최근 수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톨레랑스(tolerance.관용, 포용력)가 줄어들어 증오.대립이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권층과 여야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공동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개인적 불만이 어떤 '포용력'에 흡수되지 못하고 잔인한 테러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조중빈 국민대 정치학교수는 집권층의 책임을 더 강조한다. 그는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한 집권층의 어휘를 보면 통합형이라기보다는 특정 계층에 대해 공세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난.실업 등으로 불만이 쌓인 사람들이 이런 데 자극받아 공세적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은 이른바 언어를 통한 '증오 마케팅'으로 일반인의 증오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여당 의원 3명을 '비륜삼적(非倫三敵)'이라고 묘사했다.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지낸 노혜경 노사모 대표는 피습당한 박 대표에 대해 "박정희의 악몽과 겹쳐 있는 구시대의 살아있는 유령"이라고 썼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22일 "공동체의 증오와 광기를 해소하려는 정치 지도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공권력 무력화=공권력의 권위는 개인의 반(反)사회적 분노를 통제한다. 평택 사태에서 군대가 피습당하고 농민시위 때 정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했던 경찰이 폭행당하면서 권위가 무분별하게 해체됐다는 지적이 많다. 경실련 권 소장은 "따뜻한 공동체 못지않게 엄정한 공동체도 중요하다"며 "제복을 입은 군이나 경찰이 시위대에 얻어맞으면 사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개인의 불만 표출로 혼란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학교수는 "공권력 무력화는 전반적인 사회의 해이 현상을 부르고 그 틈으로 테러가 삐져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jinji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