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아빠와 실험하니 머리에 쏙쏙 들어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1학년 2반 교실에서 정윤서양의 아버지 정상국씨가 실험복을 입고 수업하고 있다. 정씨가 농도와 색깔을 다르게 한 설탕물을 시험관 안에서 섞어 무지개 색깔의 탑을 만드는 모습을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대전=김성태 프리랜서

"차렷, '아버지 선생님'께 경례."(반장 신유미양)

"안녕하세요. 하하하(웃음)."(학급 아이들)

"반가워요. 오늘은 고무동력배 만들기를 할 거예요."(김한봄군의 아버지 김선우씨)

20일 오전 대전 대덕초등학교 3학년 1반 교실. 지난달 15일에 이어 두번 째 맞은 '학부모 수업' 시간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작됐다.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인 김선우(LG화학 응용기술팀) '선생님'이 "배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뭐지요"라고 묻자 아이들이 앞다퉈 대답을 쏟아낸다. "바람요." "노요." "프로펠러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나무젓가락을 붙여 만들어 갖고 온 모형 배 34개를 한 개씩 나눠 가졌다. 그리고 각자 고무줄과 플라스틱 스푼을 이용해 '동력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김한봄군은 "아빠가 우리 교실에서 가르쳐 주니까 친구들에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군의 '짝꿍'인 이유연양은 "친구 아빠에게 배우니 재밌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선 한두 달에 한 번씩 이런 특별한 수업을 한다. 바로 '아빠.엄마가 하는 수업'이다. 과학자.의사.한의사.국악강사 등 다양한 직업의 학부모 30명을 '명예교사'로 위촉했다. 학급당 한두 명꼴이다. 명예교사들은 전문지식을 활용해 실험.실기 위주의 수업을 한다. 지난해까진 1년에 한 번만 했으나 올해부터는 학부모 교사 한 명당 최소한 네 번 이상 수업을 할 예정이다.

같은 시간 6학년 2반 교실. "빛의 삼원색을 이용해 컬러 TV를 만드는 거예요." 이 학급 나규원군의 아버지 나균일(LG 정보전자소재연구소) 박사가 LCD-TV의 핵심 부품인 편광필름 조각을 활용해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원리를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다.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직접 3개의 필름 조각을 겹쳐 방향을 돌릴 때마다 화면이 선명해지고 흐려지는 것을 보면서 마냥 신기해 했다.

나 박사는 "어떻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수업을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생활 관련 소재를 시각적으로 체험토록 하면서 진행하니까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1학년 2반 교실에선 정윤서양의 아버지 정상국(LG생명과학 의약평가그룹)씨의 '설탕물 탑 쌓기' 실험이 진행됐다. 머리까지 흰 실험복을 뒤집어쓴 정씨가 농도를 달리한 설탕물에 서로 다른 색깔의 물감을 타 시험관에 함께 넣고 흔들었다. 이어 밀도가 달라 섞이지 않은 설탕물이 시험관 안에서 무지개 색깔의 탑 모양을 나타내자 아이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옆에서 수업을 지켜본 유희숙 담임교사는 "아이들이 윤서 아버지를 '실험맨'이라고 부르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학교에 나와 '수업 봉사'를 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이날 6학년 1반의 3교시 음악수업. 단소 연주를 지도하는 이옥순 '선생님'은 최용석(6학년).종원(3학년)군의 어머니다. 공주교대 강사인 이씨는 3년째 5, 6학년(7학급) 학생들의 음악시간 두 시간 중 한 시간을 맡아 무료로 국악을 가르치고 있다. 홍지윤(3학년)양.성빈(1학년)군의 어머니인 김앤씨는 2004년에 귀국한 미국 시민권 소지자로 귀국 학생 특별학급의 '영어 이야기'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장형 교장은 "학부모들의 전문지식을 학교 교육에 활용함으로써 학교 교육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특색 있는 교육을 할 수 있게 됐다"며 "내년부터는 학부모 명예교사를 학급당 5~6명 선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김남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