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 일정 파악 … 미리 칼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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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표 테러사건'은 왜 일어났나. 경찰은 일단 범인 지충호씨의 단독 범행 쪽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범행 동기와 배후 등 석연치 않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돈도 없는 지씨가 최근 70만원대의 신형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말끔한 복장으로 돌아다녔다는 주장이 나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진호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1일 수사 브리핑에서 "지씨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14년4개월의 실형을 살았고, 억울함을 관계기관에 진정했는데도 도움을 받지 못해 불만을 품어오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계획된 범행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단정할 수 없고 계속 수사 중"이라고 했다.

21일 박근혜 대표를 만난 뒤 병실을 나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난을 전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쾌유를 기원하는 난을 보냈다(왼쪽부터). 오종택·김성룡 기자

◆ 계획된 테러? =지씨는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 일정을 미리 파악한 뒤 문구용 커터 칼을 준비한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은 사전에 계획됐지만 테러로 보기엔 정치적 메시지가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도적인 정치 테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씨는 지난해에도 한나라당 장외집회에서 폭행 사건을 저지르는 등 반(反)한나라당 성향이 뚜렷했다. 장기 복역으로 인한 불만을 여당이 아닌 야당 대표를 향해 터뜨렸다는 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한나라당에 따르면 지씨는 조사 과정에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안 됐으면 나는 죽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한남대 이창무(경찰행정) 교수는 "지씨는 ▶대상의 일정을 확인하고▶흉기로 목 부위를 노렸고▶정치적 의사를 표출한 점으로 미뤄 테러리스트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배후 세력은? =지인들에 따르면 지씨는 최근 최신형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휴대전화를 새로 구입했고, 최근 서울 건축사무소에 취직했다며 새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배후 세력이 지씨를 돈으로 매수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창무 교수는 "정치적 테러의 경우 보통 실패를 대비한 2, 3차 범행을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공범이나 조직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함께 연행된 박종렬(52)씨와 공범관계 여부도 의문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같이 연행된 박씨가 지씨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씨가 열린우리당 기간당원으로 밝혀지는 등 두 사람의 난동이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한나라당 측은 현장에서 3~4명이 지씨의 범행에 호응해 소리쳤고, 지씨와 박씨가 정치 성향의 단체에 함께 소속돼 있다고 주장했다.

◆ 수사 전망=대검 공안부는 이번 사건 수사를 위해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이승구 서울 서부지검장이 수사본부장을 맡고 곽규홍 서부지검 형사 5부장을 검찰 측 수사반장 겸 주임검사로, 김학배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을 경찰 측 수사반장으로 팀을 꾸렸다.

합수부는 지씨의 배후를 규명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특히 지씨가 4월 새로 구입한 최신형 DMB 휴대전화에 26명의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고 이 중 최근 2~3명과 집중적으로 통화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이들 통화자의 신원을 추적할 계획이다. 지씨의 계좌추적도 벌여 수상한 돈의 흐름이 있었는지를 파악하기로 했다. 함께 검거된 박씨와 지씨의 관계도 수사 대상이다.

이철재.한애란.김호정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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