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찍은 필자 가족사진. 앞줄이 필자(右)와 아내 이신자, 뒷줄은 딸 그레(左)와 시레.
"때는 709년 신라시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다. 경남 창원의 백월산에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란 잘생긴 청년 두 명이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암자를 구해 따로따로 수행하던 중 달달박박의 암자에 나타난 웬 여인이 하룻밤을 묵어 가기를 청했다."
나의 '구라'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람들은 졸다가도 눈을 번쩍 뜬다. 그게 사람 심리이니까. 학창 시절의 우리가 교장선생님의 근엄한 훈화를 어디 정색한 채 들어봤던가. 그저 마음에 푸근하게 안겨오는 이야기가 진짜다.
"달달박박에게 쫓겨난 여인은 하는 수 없이 노힐부득을 찾아갔다. 웬걸 그는 따뜻하게 사람을 맞아들였다. 중생의 뜻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때 느닷없이 여인이 아이를 낳을 기미를 보였다. 이게 웬일? 노힐부득은 허겁지겁 목욕물을 끓여 대령했다. 산후 목욕을 거들기도 했다. 그때다. 낭자는 보살의 모습으로 현신했다. 이후 달달박박과 노힐부득이 함께 성불한 것은 물론이다."
불교사상을 내가 알 턱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스토리는 인정에 넘치고 함께 울고 웃는 따뜻한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와 다를 게 조금도 없다. 사실 우리의 삶이란 게 그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30여 년 전 형무소에서, 10여 년 전 충청도 홍성의 한 공장에서 남들에게 그런 얘기를 들려줬지만, 얘기 와중에 조금씩 내 자신을 돌아본 것도 사실이다. 일테면 이것이 '인생파 구라''삶이 담긴 라지오(라디오)'다. 어디 그런 얘기만 했을까? 허리띠를 풀어 약장수 사설을 늘어놓거나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유행가를 뽑으며 구라를 풀었다.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울고 웃으며 살지 않았던가. 내일자로 내 연재가 끝난다니 많은 생각이 든다. 때로는 치기 어린 주먹질 얘기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송구스러웠다.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일부 우려도 안다. 그러나 나처럼 살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 역할도 있는 게 아닐까?
간혹 '삼국지'보다 재미있다는 반응에 부쩍 힘이 나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는 점이 기쁘다. 사실 꽉 막혀 있는 우리 사회에 나처럼 엉뚱한 사람도 있고, 그런 황당한 얘기에 잠시 웃고 넘어가는 계기였다면 크게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함께 해준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배추 방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