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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시작한 예술, 40년 만에 내 얘기를 합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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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호 24면

학고재 갤러리서 개인전, 여성미술 대모 윤석남

‘자화상’(2017), 한지 위에 분채, 137 x 93 cm

‘자화상’(2017), 한지 위에 분채, 137 x 93 cm

‘한국 여성미술의 대모’로 불리는 작가 윤석남(79)은 1982년 첫 개인전부터 ‘모성’ ‘여성’ ‘생명’이라는 화두를 붙들어왔다. 친정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 머리에 쪽을 진 한복 차림 여성들의 앙다문 입술과 버려진 개들의 무표정을 나뭇조각 위에, 또 종이 위에 무심하게 그려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초점을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맞췄다. “나이 마흔에 시작한 그림,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게 부끄러워 그동안 어머니 이야기 뒤에 숨었었다”는 작가는 이제야 비로소 자기 얼굴,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됐다고 말한다.

여성으로 제대로 살기 위해 뒤늦게 시작한 그림

만주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윤석남은 열다섯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기 전만 해도 화가가 꿈이었다.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타이피스트로 8년간 일하다가 결혼하면서 평범한 주부가 됐다. 넉넉한 중산층 집안의 부인·며느리·엄마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삶이었지만 원인 모를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고, ‘이렇게 살 수만은 없어’라는 생각에 붓을 잡았다. 그게 마흔 살 때였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모델 삼아 정말 미친 듯이 그렸다고 했다.

83년 뉴욕으로 훌쩍 떠난 유학길에서는 설치 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접하면서 ‘작품이 벽에서 튀어나올 수도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이는 버려진 나무 토막을 주워 그 위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는 본인만의 스타일로 뿌리를 내렸다.

85년 김인순·김진숙과 함께 한 ‘시월모임’전에서 일하는 노인의 얼굴이나 손을 투박하게 그린 그의 ‘무제’가 민중미술의 맥락에서 눈길을 끌었다. 일하는 여성의 노동을 재현하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당하는 불평등을 그리면서, 그는 선구적 페미니스트 작가로 부상했다.

“페미니즘 작가? 난 전혀 아니었어요. 79년 첫 전시를 할 때만 해도 여성주의나 페미니즘이란 말 자체가 어색했던 시절입니다. 나는 정말 살기 위해서, 여성으로 살기 위해서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그 무렵 여성문화운동팀과 만나면서 내가 왜 그렇게 발버둥쳤는지를 알게 됐어요. 난 몸으로 그걸 느낀 거고, 그들은 공부를 한 거였죠. 그때부터 서양의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내가 왜 이런 의식을 하게 된 것일까 되짚어보게 됐습니다.”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윤석남의 여성 이미지는 민중미술과 그 맥을 같이 하지만 민중미술 내에서도 여성의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 여성을 미술의 중심부로 전환시키는 액티비즘이었던 동시에 사회 계층 내에서도 중하층 계급을 주로 다룸으로써 미술의 주제로 인식되지 못한 주제들을 중심부로 이동시키는 주요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까지 40년간 23번의 개인전과 177번의 단체전을 하며 쉼없이 달려왔다.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이중섭 미술상(1996년)을 받았다. 베니스 비엔날레(1996년)와 광주비엔날레(2014년)에도 참가했다. 2016년에는 테이트 컬렉션이 그의 작품을 구입했다. 학고재 갤러리 신관에서 열리는 이번 24번째 개인전(9월 4일~10월 14일)에서는 한지 채색화를 위주로 하는 회화·조각·설치물 14점을 선보인다. 2015년부터 공부한 민화의 색감과 문양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녹여냈다.

“우리 민화에서 새로움을 발견했어요. 원색을 쓰는데도 유치하지 않고 생기발랄한, 그러면서도 부딪치는 것에서 오는 칼날 같은 애환이 색채에서 느껴지더라고요. 표현은 또 어떻고요. 물고기가 공중을 날아다니잖아요. 얼마나 자유스러운 표현인가요. 억압받는 민초들에게 이런 꿈이라도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나는 참 고집이 세구나, 그림은 끝까지 그려야지”

1층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8명의 윤석남이 관람객을 잇달아 맞는다. 드로잉 4점과 채색화 2점, 부분 채색화 2점이다. 모두 눈빛이 형형하다.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을 본 후 ‘저 눈빛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자화상 작업이다.

전시 주제를 처음으로 자신에게 맞췄다. 뭘 말하고 싶었나.  
“3년간 민화를 열심히 배우다 보니 인물까지 해보고 싶었고, 윤두서 초상화를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 모델이 없었기에 자화상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됐다. 매일 거울을 보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 새삼 고민하게 되더라. 내가 봐도 참 고집이 세구나, 그러니까 아직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하는 생각. 하지만 앞으로도 힘닿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지하 1층에 있는 조선시대 기생 매창(梅窓·1573~1610)의 초상화는 유일하게 자화상이 아니다. 왜 매창 그림을 집어넣었나.  
“내가 매창에 대해 개인적으로 너무 감정이입이 돼 있다. 그분의 삶을 연구하고 상상도 많이 했다. 38세에 영양실조로 사망했을 정도로 외롭고 힘들게 산 분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고 높은 긍지를 가졌던 분이다. 그분이 쓴 시가 그것을 보여준다. 존경하는 나의 롤 모델이다. 이런 400~500년 전 선배들의 초상화를 더 많이 해보고 싶다.”  
어머니, 본인 및 언니와 동생, 딸, 딸이 키우는 암컷 강아지로 구성된 ‘우리는 모계가족’은 평면 회화로, 또 설치 작품으로 만들어져 흥미롭다. 특히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게 어머니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한몸에 가지고 계신 듯한 분이셨다. 자기도 굶으면서 거지가 지나가면 불러서 먹을 것을 주신 분이다. 나는 그게 너무 자랑스럽다. 설치 작품 뒤 파란 커튼과 바닥의 붉은 나뭇조각은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민화의 화려하면서도 깊은 색을 본딴 것이다.”    
지하 2층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인 설치작업 ‘핑크룸 V’은 아우라가 대단하다. 1996년 첫 번째 버전 이후 다섯 번째라는데.  
“힘들어도 조수도 없이 다 내가 만든 것이다. 다만 벽면에 가득 붙어있는 30 x 30cm 종이를 잘라내는 작업은 딸이 도와주었다. 칼로 일일이 잘라냈다.”  
학고재 갤러리 지하 2층 전시장에 마련된 ‘핑크룸 V’(1996~2018). 분홍색 소파의 다리는 사마귀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생겨 분홍 구슬들 위에 놓인 소파의 불안정성을 배가시킨다. 윤석남 작가는 ’이 소파가 불안했던 내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벽에 붙은 수많은 종이 속 조형물은 세상 삼라만상을 뜻한다.

학고재 갤러리 지하 2층 전시장에 마련된 ‘핑크룸 V’(1996~2018). 분홍색 소파의 다리는 사마귀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생겨 분홍 구슬들 위에 놓인 소파의 불안정성을 배가시킨다. 윤석남 작가는 ’이 소파가 불안했던 내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벽에 붙은 수많은 종이 속 조형물은 세상 삼라만상을 뜻한다.

이 수많은 종이 문양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삼라만상이다. 방이라는 공간이 곧 자연이고 세상이다. 모든 것이 그 곳에 있다.”  

그의 작품은 11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열리는 ‘세계의 초상화들’에 한국 대표로 선정돼 세계적인 작가인 루이스 부르주아 등과 어깨를 견주게 된다. 또 내년 아트바젤 홍콩에서는 대형 설치 작품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학고재갤러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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