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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높은 개방물결…세계가 열렸다|한국화 부리내린 한국·한국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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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혼여행을 해외에 갔다왔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게 없읍니다. 보고 들을 것이 많은데다 항공편·호텔예약이 힘든 제주여행보다 편하고 선물을 안사니 여행경비도 국내여행과 큰 차이가 안나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30세이상의 해외여행자유화로 12월초 괌으로 4박5일간 신혼여행을, 그것도 첫해외나들이를 한이모씨(31·회사원). 비용은 부부가 합쳐 1백44만원. 그는 결코 자신이 부자라서 해외신혼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며 자신들이 다녀왔으니 부모들께도 해외효도관광을 시켜드리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신혼여행을 주선한 비룡항공의 경우 지난 12월 첫주에 두쌍의 신혼부부를 괌에 보낸 것을 시작으로 둘째주에 4쌍, 세째주에는 10쌍의 해외 신혼여행을 알선했다.
여행사에 따라 신혼여행코스가 다른데 인기코스는 대만·싱가포르등으로 모두 고객 숫자가 급증추세.
신혼여행뿐만이 아니다. 신정휴가를 따뜻한 동남아에서 보내려는 사람들로 여행사 창구가 붐비고 비행기 예약을 못해 발을 구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해외여행 자유화조치가 확대되면서 로마나 파리·도쿄등 웬만한 외국도시에서는 이제 한국인관광객이 서로 맞부딪치는 일이 특별한 이야기거리가 안된다. 동창모임·계모임·산악회등 해외그룹투어가 대폭 증가했고 자녀들 덕택에 효도관광을 나서는 경우는 주위에서 흔히 볼수 있다.
외국상품의 물결도 우리가 피부로 느낄수 있는 국제화 추세의 한 단면이다.
『얼마전 롯데 백화점에서 프랑스제 6인용 코피잔세트를 1만2천6백원에 샀읍니다. 조금 맘에 든다 싶으면 4만∼5만원 줘야 하는 국산에 비해 싸고 좋았읍니다.』
주부 박모씨(서울도곡동)의 얘기다. 박씨도 다른 주부들처럼 가끔 시내백화점 수입상품코너나 남대문수입상가를 찾아 쇼핑겸 구경에 나선다.
요즈음 같으면 각종 물산전이다 해서 백화점에 공산권은 물론 외제품이 많이 쌓여 국산품애용을 가장 큰 애국으로 교육받고 자라온 자신으로서는 세상 참 많이 달라졌구나 하고 느낀다는 것.
처음에는 외제물건을 사는 것이 무슨 죄라도 짓는듯 남의 시선을 의식했으나 이제는 큰 저항감이나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않을뿐 아니라 물건의 품질과 가격을 냉정하게 저울질하게까지 되었다고 한다. 박씨의 경우에서 볼수 있듯이 우리의 의식은 어느 틈엔가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의식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물론 갑작스런 것은 아니다. 6·25의 비극을 겪으면서 우리는 본의든 아니든 외국인들을 주변에서 접해야 했고 60년대 이래의 고도경제성장은 세계를 무대로 한 수출에 힘입은 것이었다. 실제로 올림픽을 계기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는 우리자신 놀라움을 감출길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이며 충격을 던지고 있는 변화가 이제까지 금단의 땅으로만 여겨져왔던 공산권과의 교류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이 어디갔다 이제 오느냐 할 정도로 대접이 좋았읍니다. 우리일행이 정부관리들이 아니어서 상대방도 정부차원의 드러내놓는 환영은 없었으나 공항영접부터 상담까지 빈틈없는 대접을 받았으니까요.』
작년 10월 KOTRA (대한무역진흥공사) 주관으로 제2차 동구민간사절단이 헝가리·폴란드·동독등을 순방했을때 그 일행으로 참가했던 박대흠씨(29·삼성물산시장개척팀)는 폴란드방문에서 받았던 인상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마침 올림픽이 끝나던 날 출국, 동구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올림픽 인사를 받아야 했다.
『한국이 올림픽을 치를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평가하더군요. 칭찬은 좋은데 한국이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고 생각하는게 칭찬이 지나쳐 너무 과대평가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읍니다.』
박씨가 겪었던 일은 우리가 공산권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히 사소한 예에 불과하다.
올림픽을 앞둔 작년 5월 레닌그라드에서 열린 국제전자쇼에서는 공산권에 처음 선보인 우리 전자제품들이 소련인들을 매료시켰고 이젠 소련이 우리에게 차관을 요청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 우리 기업의 냉장고 공장이 세워지고 우리 음식점이 북경에서 영업하고 있다.
이같은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국민들의 의식은 어느사이엔가 공산권까지를 포함하는 지구촌의 일원으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수는 없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의 변화속도가 하도 빨라 우리국민들이 이를 미처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솔직이 말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모르겠읍니다. 얼마전까지 반공을 염불처럼 외워야 했는데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해 소련·중국사람들이 밀려들어오고 이제는 북한물산전까지 연다니 이같은 변화를 어떻게 소화해야할지 난감합니다. 모든 것을 올림픽 하나로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큰 변화 아닙니까. 정부가 충분한 설명으로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저와 같은 의식의 혼란을 겪지 않을것 같군요.』
회사원 이모씨 (37·서울서초동)는 최근 우리시회에서 일고 있는 변화, 특히 대공산권 관계의 변화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세계는 지구촌」이란 말처럼 외국과의 교류가 늘면서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변화가 우리로서는 모두 국제화의 과정이고, 국제화란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세계와 협력하는 가운데 발언권을 높여가고 사회적으로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돼 이른바 국제적인 인식과 사고가 확산되는 것을 뜻한다.
이 모두가 뒷받침이 되어 국제화 시대를 열고 정치·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우리를 세계속에 편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우리가 진정한 지구촌의 주민이 되고 국제화를 이루기 위해선 넘어야할 장벽과 도전도 만만치않다.
우리는 지금 이제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울타리를 서둘러 제거하고 있지만 문을 열면 한겨울이 아니더라도 외풍은 닥쳐들게 마련이다. 또 그 외풍이 미치는 영향은 문가에 앉은 사람, 이불을 덮은 사람등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다를수밖에 없다. 개방에 따른 계층, 이해집단간의 마찰이 생기는 것도 그때문이다.
지난 여름 여의도광장과 과천종합청사에서 벌어졌던 양축농민들의 쇠고기수입반대, 데모는 국제화시대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크기와 깊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는 문을 열어 놓기 시작했고 우리국민들은 이미 빗장없는 국제사회로의 항해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제화의 숨결과 고동은 우리 살결뿐 아니라 폐부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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