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규열풍 딛고 거듭나는 진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1조8백억원의 부채를 안고 그 존망이 국민경제의 관심사가 된 거제 대우조선소는 지난해 10월중순 김우중회장이 경영포기 가능성을 밝힌뒤 사내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서로가 「공동운명체」임을 깨달은 노사양측이 『우리 손으로 회사를 살리자』며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87년 8월과 88년 봄 두차례의 장기쟁의에서 권익주장만을 앞세웠던 근로자들은 이제는 오히려 「구사대」의 입장에 서 있다.
노조측은 10월19일 『회사의 주인인 우리가 자구노력을 한 뒤에야 정부나 경영층에 정상화를 요구할수 있다』며 조합원들에게 작업시간엄수, 책임완수, 생산성 향상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냈다.
근로자대표 8명은 상경해 각정당과 관계부처를 찾아 대우가 인수당시부터 안고 있는 부실채무문제 해결등을 호소했다.
또 11월중순엔 근로자일동 명의로 신문광고를 내 『분별없는 분규를 자제하고 대화로 물어가겠다』는 공개다짐도 했다.
작업현장의 분위기도 일변했다. 투쟁적인 구호는 사라지고 각부서에서 내건 「회사없이 우리없고 우리없이 회사없다」 「정시 작업개시 정시 작업종료」등 현수막아래 근로자들의 손놀림은 갈수록 진지하고 분주하다. 회사는 회사대로 계열기업 처분을 통한 갱생계획을 세우고 있다.
빈사의 거대기업은 서로가 공동운명체임을 각성한 노사양측의 화합과 공동노력에 따라 차츰 회생의 희망이 살아나고 있다.
6·29이후 한때 극한대립의 양상으로 폭발했던 노사관계는 87, 88년 두해에 걸쳐 민주화의 대전환이 궤도에 오르면서 눈에 띄게 성숙했다. 그 변화의 핵심은 대우조선의 예에서 극적으로 나타나듯 노사공동체의식의 확산이다. 쌍방의 의식전환이 두드러진 가운데 폭력의 등장이 줄었고 쟁의도 준법화되어가고 있다.

<모두 구어대 입장>
87년 하반기의 분규 3천6백25건중 쟁의신고는 46건, 합법쟁의는 7건에 불과했으나 88년에는 1천8백여건중 90% 이상이 쟁의신고를 거쳤고 완전합법쟁의가 3백80건에 이르렀다.
지난해 3월말 경남 창원공단 2단지내 한국센트랄자동차공업(대표 장태룡·43)의 정문 담벽에 노조가 내건 현수막의 구호가 눈길을 끌었다.
『임금협상! 우리는 화합과 웃음으로 맺었다.』
노사간 인식이 달라지고 협상에 의한 노사 갈등 해결 관행이 늘고 있는 것은 억압적 정치 구조가 사라지고 87년말 노동법이 개정되면서 근로자들이 법을 지켜도 권익을 쟁취할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도 큰요인으로 분석된다. 근로자 복지와 처우가 크게 개선되면서 적대의식이 완화된 탓도 있다.
노동부가 88년5월 노사대표 1천8백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87년 여름의 분규전에는 노사관계를 「대립과 협력의 두 측면이 있다」고 보는 근로자대표가 41%로 가장 많았으나 분규후에는 「협력관계로 본다」는 견해가 52%로 가장 많았다.

<동지적 결합 필요>
이같은 변화는 한걸음 나아가 「공통체적 노사관계」의 형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일부기업에서 늘고 있는 우리사주제도, 경영참가제, 경영실적공개, 캔(CAN)미팅등 노사합숙 대화모임, 종신고용제, 기업·사원가족 유대제도, 사내복지기금, 중견사원으로 구성되는 청년중역회의, 주5일 근무제등은 공동체적 노사관계로 가는 실험이며 우리 노사관계의 전망을 밝게 한다.
고려대 명예교수 조기용박사는 『기업은 기업주·근로자가 함께 건설해 나가는 「생활공동체」라는 의식혁명이 있어야한다』며 『노사가 봉건적 주종관계가 아닌 「동지적 결합」을 할때 공동체사회가 될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강대 박영기교수는 『기업주는 종업원을 생산요소 아닌 동반자로 보아야 하고 노조를 문제의 근원이 아닌 문제의 해결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근로자들도 한꺼번에 모든 것을 얻느려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