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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세대차이|자기 잣대 고집말고 공동선 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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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사람이 사는 곳엔 어디에나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은 삶의 전제다. 지역간에는 지역갈등이, 계층 사이에는 계층갈등이, 체제간에는 체제갈등이 있다. 세대개념이 상정된다면 세대갈등이 또한 없을수 없다. 이처럼 복합적이고 중첩된 갈등은 인간들이 더불어 공유하는 삶의 현실이며 이 갈등을 극복하고 해소하려는 노력 또한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해 오고 있는 삶의 실체다. 기사년 새해를 맞아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이에 대한 처방을 모색해 본다.
세대는 1차적으로 인구구조를 10년 단위로 구분한 생물학적 동일연령 집단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런 세분법대신 기능을 중심으로 세대의 신·구개념을 조작하는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보다 보편화돼 있다.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사이의 갈등양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이데올로기를 포함하는 이념의 갈등이라고 할수 있다.
전쟁을 직접 체험했거나 전쟁의 영향속에서 사회화의 과정을 밟아온 기성세대는 아직도 전쟁에 대한 격한 공포의 감정과 증오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심정적 거부감을 그다지 느끼지 않고 있으며 기성세대의 비타협적인 반공이데올로기에는 오히려 냉소를 보내는 편이다. 고영복 교수(서울대)가 지난 82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1%는 공산주의는 실현불가능하지만 『그 이념 자체는 좋다』거나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긍정적 면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반공이데올로기를 둘러싼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현격한 시각 차이는 민족주의관이나 반미감정의 강도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의 장렬한 반미성향과 체제의 비교우의를 아랑곳않는 민족주의관,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관용의 자세에 당혹감과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전쟁체험논리에 냉소적이며 때로는 강한 반발을 보인다.
『그들은 체험이라는 표피적 현상속에 함몰되어 구조적 모순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구조 자체에 대한 과학적 인식없이 피해의식에 갇혀 원시적 감정에만 의지한다면 진실에의 접근은 그만큼 제한될수 밖에 없다』는 것이 기성세대의 완고한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젊은 세대의 대응논리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이같은 이념적 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넓어져 이미 사회의 안정과 균형을 깨는 갈등의 양상으로까지 진전돼 있다.
이데올로기 갈등과 함께 60년대부터 진행되기 시작한 급격한 산업화·도시화가 빚어내고 있는 세대간 가치관의 갈등 또한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송복교수 (연세대)는 두 세대간의 가치관 갈등 양상을 경제논리와 사회논리의 충돌에서 찾고 있다. 그는 70년대말이전 혹은 80년대 초반 1∼2년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하던 중심논리는 성장 제일주의·효율 제일주의, 그리고 차등메커니즘의 작동이라는 경제논리였다면서 경험·지식·사회화과정을 통해 절대빈곤을 체화하고 있던 기성의 건국 제1세대가 이 논리를 아무런 배리감 없이 받아들인데 반해 건국 제2세대라 할 젊은이들은 반풍요속에서의 성장 경험을 반영, 성장의 균형·배분의 균등을 더 강조하는 사회논리에 경도돼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세대갈등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대간 가치관 갈등과 관련해 그냥 흘러버릴수 없는 것이 기성세대의 보수주의와 젊은세대의 혁신적 경향성이다. 임희섭교수 (고려대)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기성세대외 정치문화는 기본적으로 「신민형」이었으며 따라서 체제순응적이었다. 이에 반해 젊은세대, 특히 대학생층은 「참여형」의 정치문화를 형성하면서 경직된 반공의식의 울타리에 갇힌채 권위주의적 통치체제에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는 기성세대에 심한 반감을 표시한다.
철학자 김태길씨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신·구 두세대 사이에 정신적 간격이 생겨나게 된 이유의 하나로 『군사정권의 독재가 점증하는데도 기성세대가 이에 항거하지 못하고 타협과 안일을 일삼았던 사실』을 들고 있다.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적 가치지향과 젊은세대의 평등주의 가치판이 맞부딪쳐 일어나는 갈등도 무시할수 없다.
권위가 용납 안되는 사회구조하에서 굳이 권위주의적 의식과 행위를 고집하는 기성세대의 자세가 그와는 정반대의 가치지향을 갖는 젊은세대와의 갈등을 유발시킨다.
이에 반해 젊은세대는 매우 평등주의적이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수직적 사고방식을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수평적이고 동등한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심윤종교수 (성균관대)는 젊은세대의 이같은 평등주의가치관을 「민중지향적 문화의식」이라고 명명하고 그 특징을 「반엘리트주의」 에서 찾고 있다. 『한국의 청년문화가 전통적으로 엘리트적이었다면 70년대이후 나타난 청년문화는 엘리트주의를 단호히 배격하는데서 민중적 요소가 다분히 발견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밖에도 임교수는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간에는 개인적 인생관을 두고도 적지 않은 갈등을 빚어낼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성세대는 특히 6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기를 맞아 지위상승의 열망을 가지고 「출세」와 「성공」을 인생의 목표로 추구해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젊은세대는 상대적으로 풍요해진 사회적 조건속에서 외면적 가치추구에 역점을 두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내면적인 자아실현의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 임교수의 분석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갈등은 개인이건 집단이건 인간이 관계를 맺고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갈등은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인가. 그것을 사회의 안정과 균형을 깨는 부정적 요소로만 보아야 할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대답이다.
『갈등은 혁신과 강조에 압력을 가해 사회체계의 화석화를 막게 한다』고 말한 학자가 있는가 하면 『갈등은 반성과 독창력의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특히 갈등을 규범과 가치·사회제도의 변동을 낳는 동력으로 파악한 「루이스·코저」의 갈등순기능론은 유명하다.
이런 주장들은 변증법적 합일의 세계로 가는데는 안티테제로서의 갈등이 매우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갈등이 순기능으로 작용하려면 그것의 해소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사회의 세대간 제갈등을 어떻게 해소하고 극복하여 공동체의 선을 확보할 것인가. 공허한 이야기로 들릴수도 있겠지만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간에 민주주의의 요체라할 상호이해와 존중·양보의 자세를 갖추는 일이 긴요하다고 할 것이다.
역사발전의 방향에 대한 확고한 신념체계의 정립과 이에 대한 세대간의 합의를 강조한 김태길씨는 그에 앞서 갈등현실에 대한 기성세대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도 민주화를 제대로 못한 정치적 책임, 빈부격차를 확대시킨 경제적 책임, 젊은이에게 질서와 안정을 제공하지 못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책임을 지는 길은 현실개혁의 의지를 실천을 통해 보여주는 것외에 다른 방안이 있을 수 없다.』

<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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