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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과 화해로 갈등의 매듭풀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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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리섭대천」. 이 말은 『주역』의 여섯번째 「송」 괘의 풀이에 나온다. 송괘의 뜻인즉 이러하다. 송사(갈등)에는 진실함이 있게 마련이지만 막힘도 있으므로 두려워하여 중도를 지키면 길할 것이로되 마지막까지 가서 끝을 보아 이익을 꼭 취하고자 하면 흉하다.
갈등·대립·대결·투쟁·쟁송. 오늘 우리사회는 이런 낱말들로 표상되는 일들이 끊임없는 소용돌이를 치는 형국에 처해 있다. 그래서인지 화해·단합·양보·타협·협력같은 단어들도 유난히 자주 입에 오른다.
사람 사는 세상에 갈등이 없을수 없다. 갈등이 사회의 근본질서를 뒤집어 엎을만큼 격렬하고 광범위하게 오래 끄는 것이 문제다.
갈등은 상당기간 힘으로 억눌러 표면화하지 못하게 할수도 있는 것이므로 전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서 갈등없는 이상사회라 볼수는 없다. 갈등의 소지를 미리 찾아내 구조적으로 방지할줄 아는 사회가 바람직하거니와, 어쩌다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이를 슬기롭게 관리해 제도적으로 흡수할 용력을 갖출수만 있어도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멀리고 가까이고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어쩐지 온통 갈등과 분쟁으로 열룩진 상처투성이로만 비쳐온다. 게다가 최근 몇해 사이에는 갖가지 사회적 갈등이 두드러지게 노출되기 시작해 줄기차게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과제를 꼽으라면 갈등의 파도를 가라앉히고 이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해 새로운 사회를 꾸려나가는 일밖에 또 다른 무엇이 있겠느냐 할 것이다.
이번에 중앙일보가 기획, 실시한 「한국사회의 갈등 인식에 관한 조사」는 그런 관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할 뿐더러 조사결과에서도 참으로 의미심장한 시준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여론조사이든 기술적으로 완벽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고, 이번 조사 또한 표본의 크기와 추출방법, 질문의 언어구성, 또는 집단의 분류기준 등에서 무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론기관의 단기적인 여론조사가 목표하는 바를 감안하고, 그 결과를 살펴보면 내용상으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 인식을 상당히 근사하게 비추어 주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선 우리의 즉각적인 관심을 끄는 결과는 우리 사회에 계층·노사·지역·세대간에, 그리고 이념적으로 갈등이 심각하다는 공통된 인식 그 자체다.
그리고 그런 갈등과 관련된 인식에 있어 뚜렷하게 차이를 드러내는 태도와 의식을 지닌 집단들이 확연하게 구획지어 진다는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이 첫째 「세대」로 분명히나뉘어지고 다음으로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구분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조심할 것은 이번 조사 결과로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었음을 강변하지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표본을 의도적으로 구분하였을 뿐아니라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30%정도는 나이라든가, 사회경제적 지위와는 관계없이 태도·의식면에서 차이를 나타냄으로써 우리사회의 다원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단 기성세대와 학생세대로 갈라 비교할때 갈등을 보는 눈이 현격하게 다르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을 시사해주는데, 이 두집단이 거의 의견일치를 보이는 사항도 바로 우리사회에는 세대간 갈등이 있다는 인식 그 자체다. 한편 기성세대가 지역갈등을 심각하게 지적하는데 비해 학생층은 이념갈등을 기성집단보다 상대적으로 더 부각시킨다.
갈등의 원천이 기성지도자·정권·기업능의 권위주의적 억압이나 독점등 구조적인데 있고 따라서 갈등 해소의 길 역시 구조적 불균형 시정, 소외세력의 권익신장및 이념적 자유의 보장과 같은 근본적인데에서 찾아야 한다는 인식은 젊은 세대에 더 강하다.
현정부에 대한 불신이 더 짙고 과거의 청산·정리와 저소득층·노동자·농민의 지위 향상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대미·남북·노사관계나 학생시위의 전망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응답자는 학생세대에 더 많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를 가지고 우리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심각성에 대하여 한번 더 성찰해 보는 자료로 삼았으면 한다.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환상이다. 워낙 버성김(소외)당하고 박탈의 쓰라림을 겪고 피해를 경험한 이들이 누적되다보니 그 목소리가 높아지고 몸짓이 과격해진 것이다.
그들의 쟁송에 진실함이 있을진대 잘못은 마땅히 바로 잡을일이다. 하지만 큰 물을 건너려다 물에 빠지는 어리석음은 피할줄 알아야 한다. 송사를 오래 끌면 결국은 우리 모두의 진을 빼는 힘의 낭비가 올터이니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갈등을 교훈삼아 반성과 겸허로 매듭을 푸는 유연성의 원리와 중용의 도리를 좇을 것이다.
우리가 다가오는 21세기에는 경제적·문화적 선진국으로 발돋움할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가름해줄 1990년대를 눈앞에 둔 오늘의 시점에서 이 갈등의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할수만 있다면 분명코 회망이 있다고 장담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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