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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새해에는 하늘도 좀 쳐다보며 살수 있게 해주소서. 우리는 하고한 날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고 살아왔읍니다. 위를 바라보기엔 앞 일이 급하고, 뒤에서 잡아당기는 일들이 하도 많아 하늘이 둥근지, 푸른지도 모르고 지내왔읍니다.
새해엔 하늘에 아직 태양이 빛나고 어두운 밤에도 별들이 반짝이는 것을 볼수 있게 해주소서. 요즘도 무지개라는 것이 동산에 걸려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모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면 순한 바람이 불고, 들엔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고, 그 위에서 뒹굴며 우리도 사람사는 것처럼 살수 있게 보살펴주소서. 사람 사는 동네에서 자연을 기리고, 사람의 훈기를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닙니까.
새해, 이 진솔한 아침에 눈 좀 맑게 해주소서. 선거때는 온세상에 좋은 말은 다 하더니,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는 사람이 없읍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허황한 목소리 그대로 들려오고, 정치인들 하는 얘기는 어쩌면 그리도 낡은 축음기판 그대로입니까. 맑은 눈으로 새 사람, 새 날, 새 시대좀 볼수 있게 우리 눈에 총기를 주소서.
그리고 새해엔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게 해주소서. 우리는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면 무섭기만 합니다. 이게 어디 사람사는 고장입니까.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게 만드는 정치는 없읍니까. 그런 것도 제대로 못하면 도대체 정치는 무엇때문에, 누구를 위해 하는 것입니까. 새해엔 가슴 철렁하는 일 그만좀 보여주소서.
새해엔 좋은 세상이 열리는 겁니까.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땅에서 같은 물 마시며 사는 같은민족끼리 40여성상이 지나도록 내왕은 고사하고 기별조차 모르고 지내는, 그 기막힌 사연은 이제끝을 내야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 큰 소리 그만치고 그 일이라도 하나 성사시켜 주십시오.
그래서 우린 희망을 얘기할수 있고, 내일을 기다릴수 있게 만들어 주소서. 우리 민족은 쇠심줄만큼이나 질긴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게나 짓밟히고 눌리고 쫓기면서도 올림픽을 너끈히 해내고, 가진 것도 없는 나라에서 수출품을 5백억달러어치도 넘게 실어내고, 독재니, 뭐니 하던 것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민주주의를 해도 제대로 할 궁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장 망할것 같은 상황에서도 용케 살 길을 찾아 꿋꿋이 일어나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새해엔 그 모든 시련을 다 견디고, 사람사는 것같은 세상 한번 만들어 보아야 합니다. 위대한 시대의 원년이 되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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