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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우리의 잠재된 역량을 기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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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화 개혁작업과 그 바탕 위에서 추진되어야할 수많은 내외의 발전과제를 안고 우리는 새해를 맞았다. 이들 과제가 아직은 가능성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땅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의 지혜와 선택에 따라 순조롭게 물러나갈 수도 있고 반대로 우리가 지난날 수없이 겪어온 위기의 악순환으로 얽매일 수도 있다.
그런 뜻에서 새해가 우리에게 던진 가능성의 세계는 절호의 기회와 함께 냉엄한 시련을 다같이 내포하고 있는 카오스의 세계다.
결코 비관할 이유, 위축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먼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않아도 수삼년 동안의 체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그 체험은 거의가 전진적 몸부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의 선택은 지나간 많은 새해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의미를 갖는다. 격류를 이루고 있는 전향적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올해가 갖는 그런 역사적 중요성을 신중히 음미하며 가능성의 세계를 최상의 현실로 다듬어 나가야될 것이다.
국내적으로 우리는 5공청산의 과거 집착을 끝내고 새 질서와 정통성 구축을 위한 미래지향적 작업에 나서야할 단계에 와 있다.
온 겨레의 염원인 남북한관계의 정상화 작업은 오랜 탐색의 과정을 지나 이제 여러 갈래의 접촉을 실현시킬 단계에 와 있다.
대외적으로는 소련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비롯한 북방정책이 구체적 진전을 이룩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한미관계는 과거의 편향적이고 의존적인 것에서 벗어나 대등한 관계로 재조정될 단계다.
지난해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2%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한 우리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내외여건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과정의 순탄한 진행에 바탕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그 추세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같은 중첩된 문제들을 앞에 놓고 우리가 1차적으로 이룩해야할 과제는 과거 독재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가치관의 피폭상태로부터 하루 속히 우리 사회가 지향해 나갈 방향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권위주의의 혹독한 압제에 대한 반발로 모든 권위를 불신하는 풍조가 일고 있다. 고도성장에 대한 집착이 많은 소외계층을 만들어 내고, 성장의 불균형을 가져온데 대한 반발로 고도성장 자체에 대한 냉소주의도 일고 있다.
외세 의존적 문화의 오염에 대한 반발로 편협한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세력도 번지고 있다.
이와같은 폭넓은 과거에 대한 반작용이 극대극의 대결양상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 오히려 이를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가치관 확립을 위한 활력소로 수용하는 문제가 올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최상의 과제임에 틀림 없다.
권위주의적 지배 체제는 단연코 배격되어야 하지만 사회가 건전하게 영위되어 나가는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와 개인의 권위는 소중한것이다.
고도성장 제일주의가 사회 전반을 압도함에 따라 생겨난 독선주의와 불균형은 시정되어야 하지만 경제성장 자체는 견지해야 된다. 외세의존적 욕된 역사는 청산되어야 하지만 세계 10위의 교역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과거의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고립주의로 되돌아서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남북한관계의 정상화와 통일 달성은 온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지만 40여년동안 한차례의 전쟁과 오랜 대결관계로 유지되어온 두 객체 사이의 화합은 감상주의 만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다.
이와같은 모든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올해의 최우선 과제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계층간, 세대간의 갈등은 넓고 깊다. 이 갈등을 좁히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마찰이 예상되지만 이는 위기로 보다는 사회의 한단계 발전을 위한 진통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진통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고 저력을 쌓았다고 믿는다.
이 충격을 포용하는 최선의 길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회 공동체 의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적 민주화가 수반되지 않는한 별 의미가 없다. 산업혁명을 먼저 이룩한 서구의 경우 보수정당이 앞장서서 사회복지정책을 실시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이룩한 경제 성장은 근로자와 기업인들의 땀의 댓가였음을 다함께 시인해야 한다. 그 바탕위에서 공동체 의식이 행동화될때 비로소 한단계 도약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민족 전통 속에 공동체 의식의 뿌리는 깊다. 그 뿌리는 오늘의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내부의 진통에 매달려있는 동안 외부에서 열리고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40여년간 한반도를 세계의 변방으로 밀어낸 이념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 변화는 한국을 아시아·태평양에 형성되고 있는 활기찬 경제권의 중심부에 우뚝 솟게 만들고 있다.
이 절호의 기회를 포착해서 우리국민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바탕도 올해엔 마련해야 된다. 이렇게 볼때 89년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가능성의 세계는 무한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새해는 우리 모두에게 내부의 갈등을 무리없이 해소하고, 주어진 가능성의 세계를 최상의 현실로 창조할 용기와 자제력과 지혜를 갖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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