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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생들 되레 더듬어 … 영어 자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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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3일 미국 오클라호마주 지방법원에서 열린 '미 전국 고교 모의 법정대회'에서 8강에 오른 한영외고 유학반원들이 변론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유준·홍준성·김진성·홍석현군, 이혜린·황유선·정지영·김문정·임희중양. 임양은 최고 증인상도 수상했다. [한영외고 제공]

미국 전역의 우수 고교 학생들이 참가하는 '제23회 미국 고교 모의 법정대회'에서 한국 한영외고생들이 8강에 올랐다. 또 전체 참가자 가운데 6명에게만 주어지는 개인상 하나도 거머쥐었다.

이 대회는 미국 52개 주별로 예선을 거쳐 주 대표 팀끼리 경쟁하는 전국 규모의 논리력.발표력 경진대회다. 한영외고는 이 대회에 외국 학교로는 최초로 참가했다.

올해 대회는 11일부터 13일까지 미국 오클라호마주 지방법원에서 열렸다.

대회 직전 현지에 도착한 한영외고 팀은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팀원 9명이 모여 유도신문(leading question), 이의제기(objection) 등 법률용어를 다시 익히고 상황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했다. 주최 측이 대회 이틀 전에야 사건 개요를 참가자들에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모의 법정 현장에서 정해지는 역할(검찰관, 변호인 혹은 증인)을 해내기 위해 사건 개요를 토대로 각각의 논리와 대응전략을 챙겼다.

팀 리더인 황유선(17.3년)양은 "이 대회에서는 말도 잘해야 하지만, 퍼포먼스가 뛰어나야 하는데 팀원들이 당황스러운 순간에서도 웃으며 여유있게 상황을 잘 헤쳐나갔다"면서 "한국 학생들의 순발력과 상황이해력을 널리 알릴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미국 팀들은 보통 대회 참가 1년 전에 팀을 구성, 미국법에 대한 지식을 쌓고 변호사와 검사까지 학교로 초빙해 대회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영외고 팀은 참가가 확정된 3월부터 두 달가량 준비했다. 이 학교 김숙영 교사는 "미국 학생들과 경쟁해보도록 참가를 추진했는데 8강까지 올라 너무 대견스럽다"며 "학생들이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8강전이 열린 13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지방법원에서는 미국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머리가 까만 임희중(16.한영외고 2년)양이 발군의 실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변호인 역을 맡은 미국 공립학교 팀이 증인으로 나선 임양을 용의자로 지목하며 유도신문을 쏟아냈다. "With Jo dead and Cody disqualified, you are in the first place. Is that correct?"((1등인) 조가 죽고 (용의자로 몰린) 코디가 자격을 박탈당했으니 당신이 1등이 되죠. 그렇죠?)

"Yes, but even if I do end up in the first place, I would never take the prize nor the money. Jo is my best friend. And I always want to be there for her."(내가 1등이 됐더라도 상은 물론이고 상금도 받지 않았을 거예요. 조는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이고 영원히 그럴 거니까요.)

사건 개요는 승마경기인 로데오 결승전에서 2위를 차지한 선수가 1위 선수의 안장을 미리 끊어 놔 기수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는 것으로 돼 있다. 임양은 숨진 1위 선수의 친구이자 3위를 차지한 기수로 증인역을 야무지게 해내 방청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최고 증인상(best witness prize)'까지 거머쥐었다.

"미국애들은 영어가 모국어인데도 말을 더듬고, 외운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더라고요. 우리 팀은 끈기, 승부욕, 책임감이 강해 좋은 성적을 거둔 것 같아요. 미래의 글로벌 경쟁자들에게 주눅들 거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들 팀원 9명은 전원 미국의 명문 대학으로 진학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임양의 꿈은 유엔에서 일하며 국제환경법 제정에 관여하는 것이란다. 지구의 공적재산인 자연을 아름답게 지켜내고 싶어서란다.

이원진 기자

◆ 미 고교 모의 법정대회(U.S.A highschool national mock trial)=미국 법조인협회가 고등학생들의 준법정신과 논리력을 키워주기 위해 1983년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시작한 대회다. 그 뒤 많은 주가 참가해 전국 규모 대회로 성장했다. 매년 3월 예선이 시작돼 주 우승팀끼리 본선에서 리그전을 벌인다. 상위 2팀에게는 단체상, 증인과 변호인 각 3명씩 6명에게는 개인상이 주어진다. 입상자에게는 미 명문대 입학시 가산점이 주어진다. 국내에서는 올 3월 전국 8개 외고가 경연대회를 벌여 우승팀인 한영외고가 본선에 참여했다.(http://www.nationalmocktri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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