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연극 '닭집에 갔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골라, 골라." 컴컴한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멈칫하게 된다. 잘못 들어왔나. 웬 장사꾼 소리, 게다가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라니…. 연극 '닭집에 갔었다'의 첫 풍경이다.

언제 막이 오르는지 정확하지 않다. 관객이 하나 둘 자리에 앉을 무렵 무대엔 이미 '이조 닭집' '길 다방' '낙원 떡집' 등 낯익은 간판이 걸려 있다. 컵라면과 순대, 무와 튀김 닭도 눈에 들어온다. 영락없는 시장통이다. 연극 시작 10분 전부터 배우인지 장사꾼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나와 흥정을 시작한다. 관객에게 돈을 받고 허름한 옷도 판다. '정말 연극 맞아'라는 생각이 들 때쯤, 정장 차림의 늙은 아주머니가 걸어나오더니 소리를 버럭 지른다. "뻔뻔스러운 년! 니가 내 아들 잡아먹었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봐라, 이 독한 년아." 가게문을 박차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야단법석을 떠는 사이, 관객도 '쑤~욱' 무대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연극의 구조는 요즘 인기 높은 미국 TV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과 비슷하다. 시장 한복판에서 소소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닭집 제천댁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이 분위기를 끌고 간다. 범인이 예상 밖 인물이라든지, 극중에 기막힌 음모가 숨어 있다든지 등의 자극적 내용은 없다. 오히려 연극은 '미스터리'가 아닌 '일상성'을 노린다.

무대엔 수많은 행인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린다. 폰카를 찍으며 오도방정을 떠는 고삐리도, 거짓 장애우 행세의 동냥아치도 나온다. 심지어 한 배우는 1인 17역까지 소화한다. 장면 장면을 정교하게 짜놓은 연출가는 시치미를 뚝 떼고 관객에게 이렇게 툭 한마디를 던지는 것 같다. "어때, 진짜 시장 같지? 그것도 몰래 엿보는 것 같지 않아."

연출가 위성신씨는 요즘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닭집에 갔었다' '늙은 부부 이야기'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 '염쟁이 유씨' 네 편을 '동시 개봉' 중이다. 남루한 시장판에 돋보기를 들이댔지만 휴머니즘이란 이름의 어설픈 위로를 삼간다. 과장된 슬픔도 없다. 극 전체를 중용의 미덕으로 뚝심 있게 끌고 간다.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21일까지 아롱구지 소극장. 31일부터 신연아트홀에서 연장 공연된다. 1544-1555,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