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도 힘찬 울림을 '문화계의 붉은 악마' 떴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17일 대덕연구단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내 연못정원에서 ‘카르멘 환상곡’을 연주하는 대전시향 목관 5중주단. 뒤쪽은 ‘높은 음자리표’ 회원들.

17일 오후 7시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룡동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정광화) 내 야외정원. 잔디밭과 소나무 숲, 연못으로 둘러싸인 오붓한 공간에 '높은 음자리표' 회원 150명이 모여들었다. 부부 동반한 이들이 삼삼오오 잔디밭과 벤치에 자리를 잡자 대전시향 목관 5중주단의 '카르멘 환상곡'이 울려퍼졌다. 이어 대전시향 금관 5중주단이 모차르트의 '알렐루야'를 연주했다. 정원 한쪽에선 바비큐 굽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높은 음자리표'는 대전시향을 후원하는 순수 민간 서포터스다. 최근 지방 교향악단으로 괄목할만한 대전시향의 성장세를 뒷받침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모임은 대전.충남 지역 클래식 애호가들이 2001년 11월 만들었다. 공연장에서 마주치던 매니어들이 '시향을 돕고, 보다 좋은 음악을 즐기자'며 조직화에 나섰다. 크게는 지역 문화 발전이다. 실천은 작은 일부터. 시향 공연이 있으면 빠짐없이 참석하기, 표는 반드시 본인 돈으로 구입하기, 음악회에서 남들보다 열심히 박수치기, 대전시향 서울 공연에 단체 원정 응원, 외국인 독주자나 객원지휘자가 오면 회원 집에서 잠 재우고 관광 안내해주기 등등. 작지만 시향엔 큰 힘이 되는 일이다.

이같은 후원에 감사하는 뜻에서 시향이 마련한 자리가 '작은 음악회'다. 단원들이 정기연주회 하루 전날 회원들을 위해 별도의 소규모 공연을 마련한다. 17일 목관 5중주단과 금관 5중주단은 작은 음악회를 위해 별도의 소품을 준비했다. 작은 음악회는 큰 음악회(정기연주회)를 위한 소개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날 모임의 경우 다음날 시작되는 마스터 시리즈에 출연하는 연주자 소개가 이어졌다. 대전시향 음악감독 함신익씨의 소개로 마이크를 잡은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야콥 카스만은 다음날 연주할 곡목에 대해 설명했다.

"피아노가 있으면 한 대목을 미리 들려주고 싶은데 야외라서 그냥 설명만 해야 하니 아쉽군요. 카덴차(협주곡에서 독주자가 혼자 연주하는 기교적인 부분)가 보통 1악장 끝 부분에 한두 페이지 정도 나오는데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제2번의 카덴차는 1악장 앞쪽에 14페이지나 나옵니다. 피아노 독주에서도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음색을 느낄 수 있어요."

지난해 2대 회장에 취임한 김광희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작년 대전시향의 일본 순회공연 때 회원 14명이 함께 갔다"며 "조만간 대전시향의 유럽 순회공연이 성사될 것"이라며 회원들의 해외원정 응원을 당부했다.

대전시의 지원과 높은 음자리표 회원들의 응원 덕분에 대전시향은 일찌감치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 대열에 합류했다. 의욕적인 프로그램으로 다른 교향악단의 부러움을 산다. 올해 프로그램 중 눈에 띄는 것은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국내 초연이다. 6월 24일 오후 7시 대전문화예술의전당, 25일 오후 7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소프라노 김영미, 테너 브라이언 더우넌, 바리톤 정록기, 대전.창원시립합창단, 서울레이디스싱어즈, 고양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연주한다. 042-610-2264.

대전=글.사진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