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화해 뒷받침할 작품 쓰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실향민 작가」 이호철씨(56)가 33년에 걸친 창작활동을 스스로 정리한 『이호철 전집』을 펴낸다. 55년 황순원씨의 추천으로 『문학예술』지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발표한 콩트·단편·중평·장편소설·산문들을 12권에 모을 이 전집 중 단편집 『판문점 』, 단편·콩트집 『빈 골짜기 』, 중편집 『무너 앉는 소리』 등 3권은 24일 청계연구소에 의해 출간됐으며 나머지는 한 달에 한 권씩 펴낼 예정이다.
『88년 한해는 실로 민주화를 향한 격동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격동의 시대일수록 근원을 꿰뚫는 지혜가 필요한데 너무들 들떠 있는 것 같아요. 이 시대의 현실에 입각, 내 자신을 점검하겠다는 생각에서 전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격동의 시대상황에 휩쓸려 본질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자기점검 수단으로 전집을 기획했다는 이씨의 말대로 그의 작품세계는 표피적 문학사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분단체제가 빚은 소시민적 다양한 삶을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그린 전통적 사실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작품을 정리하면서 제 작품이 궁극적으로 「남북화해」로 일관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분단 극복을 위해선 남북 이질화 현상 극복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북에, 북은 남에 서로 길들여지고 익숙해져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친숙해지게 하는데 문학의 몫이 있다고 봅니다. 남과 북의 삶을 민족의식에 바탕을 두고 진솔하게 그림으로써 소설을 통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앞으로 그런 작품을 쓰려합니다.』
32년 원산에서 태어나 5년 간 사회주의 체제를 겪다 50년 월남, 분단시대의 역사를 극적으로 살아온 이씨는 분단극복을 위해선 남북이 서로 「길들여지고 익숙해지기」가 필요하다며 이 부분이 바로 문학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73년 유신체제 이후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민주수호 국민협의회·문인 간첩단 사건·노래 사건·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수차 투옥되기도 했으며, 현재 민족문학 작가회의 이사로 활약하고 있는 이씨는 「시대의 당위성으로서의 행동과 예술로서의 소설」은 구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대의 당위성을 담되 소설은 예술이어야 합니다. 현실을 예술성으로 여과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예술의 여과 과정을 무시하고 소설이 운동과 같이 현실적 공간으로 내달아서는 곤란합니다.』
이호철씨의 「예술로서의 소설적 공간과 운동으로서의 현실적 공간」 구분은 격동의 시대에 자칫 현실적 공간으로 치닫기 쉬운 젊은 작가들에게 시사하는바 크다. <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