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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은 인상파의 아버지 「쿠르베」의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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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마네」 「드가」 「르누아르」 「고흐」 「고갱」 등의 메가톤급 회고전이 줄을 이어 인상파 화가들의 해로 기록된 88년에 이어 89년은 이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귀스타브·쿠르베」의 해가 될 것 같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은 59년 이후 미국내에서는 최초로 대규모 「쿠르베」전을 최근 개막,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의 대표적 작가로 인상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쿠르베」를 재조명하고 있다.
새해 1월16일까지 전시되고 이어 2월19일부터 4월30일까지는 미니애폴리스 미술대로 옮겨져 전시 될 「쿠르베」 재조명전에는 세계 모처의 미술관 및 소장가들로부터 출품 받은 「쿠르베」의 초기작부터 만년작에 이르기까지 유화 85점과 드로잉 12점이 선보이게 된다.
「쿠르베」는 프랑스 동쪽 스위스 접경지역 오르낭에서 1819년 출생, 애초에는 법률공부를 위해 파리에 나왔으나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독학으로 1844년 살롱전에서 입선했다.
그러나 문학적이며 낭만적인 주제를 고전적으로 표현했던 「쿠르베」의 초기학풍은 1846년 이후 보다 일상적인 주제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변모, 당시 화단의 풍토에서는 전위적인 이 같은 표현법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단순한 구성과 솔직한 묘사가 돋보이는 1849년작 『오르낭의 장례식』이나 1855년작 『화실』 등은 오늘날에는 그의 대표작으로까지 꼽히고 있으나 당시 평단의 일부 비평가들로부터는 『추를 미화시킨 불경스런 희화』란 호된 비판을 받아 1850년의 살롱전 및 1855년의 파리만국박람회 출품을 거절당했었다.
그러나 견고한 마티에르와 스케일이 큰 명쾌한 구성에 특색이 있는 그의 사실주의적 작품들은 19세기 후반의 젊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반·고흐」의 경우 「쿠르베」로부터의 영향은 「세잔」과 함께 지대한 것이었다.
「마티스」 「피카소」 「헨리·무어」 등은 「쿠르베」 작품의 수집가로 이름나 있으며 「쿠르베」의 젊은 여인들에 대한 묘사는 오늘날의 화가들도 모방, 답습되고 있다.
이번「쿠르베」 재조명전에는 이 같은 그의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다양한 수준의 작품이 모두 소개되고 있는데 다만 아쉬운 점은 작품 파손 우려 때문에 파리 뮈제도르셰에 소장되어 있는 『오르낭의 장례식』과 『화실』이 빠졌다는 것이다.
「쿠르베」는 당시 파리화단에서만 「반항아」가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반역자」로 낙인찍혔는데 파리 코뮨의 일원으로서 1871년 「나폴레옹」1세 동상 파괴 책임을 지고 투옥되었다가 1873년 스위스로 망명, 1877년 제네바에서 객사했다.【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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