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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지주회사'가 뭔지 알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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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이런 지주회사 형태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정부가 큰 기업들끼리 뭉쳐서 가격을 올리는 담합행위를 못하게 규제하자 이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해 보니 기업 경영상 여러 장점이 발견되면서 제도적 정비를 거쳐 오늘날 현대적 기업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기업 독점 등을 우려해 지주회사 제도를 금지해 왔습니다. 한 회사가 많은 자회사를 두면 경제력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러다 외환위기 이후 지주회사 제도의 좋은 기능을 인정해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했습니다. 잘 안 되는 사업을 쉽게 정리할 수 있고 대주주들이 누구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등 기업 경영을 보다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 보자는 취지였지요. 실제로 지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아 지분을 떼어 팔기도 쉽고 사서 붙이기도 쉽습니다.

대기업 그룹 계열사 중 다른 계열사 주식을 집중해서 갖고 있는 회사를 흔히 지주회사라고 하기도 하나 법적인 개념의 지주회사는 공정거래법에 의해 그 요건이 정해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법적 요건을 갖춘 지주회사는 31개(금융지주사 4개 포함)입니다. ㈜LG나 GS홀딩스 같은 회사가 대표적입니다. 가령 ㈜LG는 LG전자.LG화학.LG텔레콤 같은 자회사를 두고 있고, GS홀딩스는 GS칼텍스.GS리테일.GS홈쇼핑 같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지주회사는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지주회사의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순수지주회사는 제조.유통.판매 등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하는 사업활동은 하지 않고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자회사를 지휘하는 일만 합니다. 자회사의 실적에 따라 받는 배당금이 주요 수익원입니다. 사업지주회사는 혼합지주회사라고도 하는데 자기 사업을 하면서 지주회사 기능을 함께하는 회사를 말합니다.

지주회사의 법적 규정이 따로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규정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선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지분을 30% 이상(비상장사일 경우는 50%) 확보해야 합니다. 자회사 간 서로 지분을 갖는 일도 금지했습니다. 작은 지분만으로도 여러 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지요.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자회사로 두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한다는 명분이지요. 지주회사의 부채비율도 100% 미만으로 유지해야 합니다(현재 공정거래위는 200%로 늘려주는 방안 추진 중).

이런 까다로운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경영 및 소유 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재벌'이라 부르는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은 지분 구조가 복잡합니다. A사는 B사 지분을 갖고 B사는 A사 지분을 갖고 있거나(상호 출자), A회사→ B회사→ C회사→A회사 형태로 돌아가면서 지분 고리를 엮는 것 (순환 출자)이지요. 이런 지분 구조 아래선 한 계열사의 실적이 나빠지면 다른 계열사도 영향을 받습니다. 또 기업 총수가 이런 복잡한 지분 구조를 통해 작은 지분을 갖고도 전 계열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계열사의 독립 경영을 해쳐서 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 지주회사→자회사 식으로 지분구조가 단순해져 투명성이 높아집니다. 자회사는 같은 지주회사 아래에 있는 다른 자회사에 대한 출자 부담 없이 자신의 고유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지주회사를 만들려면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어요. 우선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가령 삼성이 지주회사를 설립해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두는 형태로 전환하려 한다 칩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현재 100조원가량인데 지주회사 설립 요건인 지분 30%를 확보하려면 30조원이 듭니다. 부채비율 한도를 200%까지 채워 은행돈 20조원을 꾼다고 해도 자기자본이 10조원은 있어야 합니다. 대주주가 안정적인 지분율 50%를 확보하려면 5조원은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삼성전자뿐 아니라 다른 자회사 지분까지 확보하려면 필요한 돈은 가히 천문학적 액수에 이릅니다. 아무리 돈 많은 대기업 총수라도 이만한 액수를 마련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의무 보유해야 할 자회사 지분율을 30%에서 20%로 낮추는 등 요건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재계 일각에선 지주회사가 경영 투명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 아닌데도 정부가 지주회사 전환을 사실상 종용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이야기지요.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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