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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저자도 초고는 엉망진창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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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호 31면

책 속으로 

쓰기의 감각

쓰기의 감각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번역
웅진지식하우스

미국 작가 지망생들의 필독서 #자서전 형식에 글쓰기 팁 담아 #‘매일, 마구 써라’ 구체적 조언 #거짓말 꾸며내면 결국 들통나

좋은 글이란 과연 무엇일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도 평생 고민하는 질문이다. 독자가 ‘글 나라의 왕초보’가 됐건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않은 글 무림의 고수’가 됐건, 베스트셀러 작가건, 많은 건질 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선사하는 게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대표적으로 그런 경우다. 부제는 ‘글쓰기와 인생에 대한 몇 가지 설명(Some Instructions on Writing and Life)’이다. 낄낄대며 읽다가 참지 못하고 빵 터트리게 되는 이 책은 미국에서 대학 강의 교재, 예비 작가 필독서다. 1994년 출간 이래 미국에서 글쓰기 관련 도서 중에서 톱5~10을 놓치지 않은 위상을 자랑한다. 과제물 제출 고민이 많은 대학생을 위해 참고서도 여러 권 나와 있다.

7, 8세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저자가 자서전·회고록 형식으로 쓴 이 책은, 고급 글쓰기·인생 지침서다. 글쓰기 중에서도 소설 작법에 대한 책이다. 소설가가 결코 될 일이 없는 독자라도,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왜냐. 피아노·바이올린을 전혀 배워본 적 없는 음악 애호가도 충분히 연주곡을 수준 높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악기를 단 일주일이라도 배운 감상자는 느끼는 게 좀 다르다. 글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소설 초고 한 페이지를 쓴 독자는 소설을 더 깊이 음미하게 된다.

『쓰기의 감각』에서 건질 내용을 재구성하면 이런 것들이다.

글쓰기의 고통을 표현한 사진. 사진 제목은 ‘작가의 글쓰기 막힘(writer’s block)’이다. [사진 드루 코프먼]

글쓰기의 고통을 표현한 사진. 사진 제목은 ‘작가의 글쓰기 막힘(writer’s block)’이다. [사진 드루 코프먼]

- 글쓰기는 모든 글쟁이에게 막막한 작업이다. 어떻게 막막함을 극복할 것인가. 책의 원제 버드바이버드(Bird by Bird)가 알려주는 것처럼 새들에 대한 글을 쓰려면,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새에 관해 쓰면 된다. 다른 모든 인간 활동이 그렇듯이 글쓰기도 단계를 하나하나(step by step, one by one) 밟아가시라.

- 글쓰기 초보는 자신의 경험, 특히 어린 시절 이야기(유치원·초등학교 선생님들, 친구들 등)로 글쓰기 연습을 시작하는 게 좋다.

- 모든 초고는 ‘시티(shitty)’, 엉망진창이다. 유명 작가들도 초고는 거의 쓰레기나 개똥 같다. 완벽한 원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같은 시간에 써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날 과음했거나 안 했거나 상관없이 써야 한다.

- 마구마구 써 내려 가야 한다.  ‘초고의 초고’를 쓰는 도중엔 편집할 생각 말라. 철자와 문법·어법 같은 것은 완전히 무시하라. ‘완벽주의’는 글쓰기 최고의 적이자 인류의 적이다.

- 언젠가는 ‘글 길의 막힘(작가들이 글을 쓸 내용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애를 먹는 상황, writer’s block)’ 현상, 슬럼프가 찾아온다.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때가 되면 슬럼프는 해결된다.

- 플롯에 신경 쓰지 말고 등장인물을 걱정하라. 플롯은 저자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만드는 것이다.

-지식·정보 확보에 필요한 조사(research)가 중요하다. 전문적인 책보다는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생생한 현장의 정보를 얻는다.

- 메모를 잘해야 한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건 우연히 귀동냥으로 얻은 재미있는 이야기건 적어라.

- 모든 독자는 작가보다 더 지극히 똑똑하고 주의 깊다. 그러니 결국 들통날 거짓을 꾸미지 말라. 내가 아는 것을 독자는 모른다고 전제하고 ‘…라는 게 있다’는 식의 가르치려 드는 표현을 쓰지 말라.

- 출간 집착을 버려라. 물론 책 한 권으로 팔자 고친 사람들도 있다. 천문학적인 인세 덕에 반(半) 은퇴 상태인 작가도 많다. 책이 나오면 모든 매체에서 서평을 크게 써주고 인터뷰가 쇄도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은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책을 못 낸다. 출간으로 마음의 평화나 기쁨을 얻는 것도 아니다. 책을 출간한 다음에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다.

저자 앤 라모트(64)는 소설가·칼럼니스트·서평가, 글쓰기 교실 강사다. 라모트는 13살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그를 구원한 것은 글쓰기와 믿음이다. ‘거듭난 크리스천’인 라모트는 좌파·진보 성향의 사회운동가다. 아들 한 명, 손자 한 명을 둔 ‘싱글맘’이기도 하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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