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올해 한국과학 기술계의 명암|정치열기 뒷전서 "거북이 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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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격동의 88년, 과학 기술계는 올림픽과 정치열기의 뒷전에서 착실한 전진에는 다소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토의와 논의는 분분했으나 결실은 적었다. 내일을 위해 지난 1년을 결산해 본다.

<성과>
6공화국 들어 정부는 과학기술에 몇 가지 특기할만한 정책을 내세우고 추진했다.
이중 대표적인 예가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과 관심. 87년 하반기에 계획된 기초과학연구소는 우여곡절 끝에 올 7월 기초과학연구지원센터로 형식상 발족했다.
이 센터는 전국 대학 기초과학연구소장들이 1월 연명으로 정부에 반대 건의문을 제출하자 몇 차례 수정을 거듭한 후 대학에 연구기자재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아직도 설립위치와 인력확보가 안돼 진통중이다.
다행히도 국회경과위는 정부예산을 심의하면서 2백억원의 기초연구비를 증액, 이중 1백억원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3월29일 대덕단지에 제공된 학·연·산 연구교류센터도 대학의 기초연구와 산업기술이 서로 유기적으로 맺어지도록 하는 연구협력의 장으로 계획됐다. 한편 2월17일 남극과학기지가 준공돼 우리의 기술을 과시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특히 올림픽 전산시스템과 도핑검사의 성공은 우리기술의 잠재력을 보여준 대사로 꼽을 수 있다.
민간부문에서도 연구개발은 소리 없이 강화됐다.
4월 5백개를 돌파한 민간연구소는 12월 들어 6백개를 넘어섰다. 89년에는 이 연구소를 내실화해 제대로 기능이 발휘되도록 지원·감독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연구성과로는 기업과 전자통신연구소등이 4메가D램 반도체의 개발을 끝내 내년 3월이면 대량생산을 바라보게 됐다.
과학기술원은 광자기디스크 개발에 성공했고 화학연구소는 무공해·무독성미생물 농약을 발견, 신물질 창출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표준연구소는 10월 국제도량형위원회의 미터·광도·온도 등 3개 자문회의에 가입, 한국을 선진표준국의 하나로 끌어올렸다.
국내 최초로 도입된 슈퍼컴퓨터가 12월6일 정식 가동에 들어간 것은 국내의 과학과 기술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89년에는 대대적 활용과 성과가 예상된다.

<과제>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출연 연구소에 들이닥친 노동조합 결성은 연구원·연구소·정부가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도록 촉구했다. 6월에는 노동정의로 과학기술원이 15일간 휴무하는 진통을 겪었으며 12월에도 전자통신연구소·인삼연초연구소 등이 연쇄파업, 정부의 해결책을 요구했다.
연구노조는 연구의 자율화·처우개선 등을 내세우고 대책을 바라고 있으나 뾰족한 수가 없어 이 문제는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78년 첫 원자력발전소가 가동한 이래 금년만큼 원자력안전문제에 대해 논의가 분분한 적은 없었다.
국정감사에서는 물론 언론계·학계에서도 1년간 꾸준히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원자력발전소 사고, 핵폐기물의 불법 누츨 등은 원자력 안전성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1년이었다.
이밖에 헌법에 근거해 지난 연초 구상했던 「대통령 과학기술자문회의」가 거론조차 되지 못한 것은 과학기술이 정치에 밀린 좋은 예다. 기초과학육성법도 제정되지 못했고 특허 등 과학기술 정보활동은 오히려 뒷걸음 친 듯 한해였다 <장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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