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34년 만의 리메이크 … 돌아온 '포세이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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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포세이돈호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배 안을 헤매고 다니는 사람들(下)과 뒤집히기 전 포세이돈호의 화려한 모습(上).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포세이돈'만큼 존재할 이유가 적은 할리우드 대작 영화는 생각하기 어렵다."(뉴욕 타임스)

"영화 '포세이돈'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침몰했다."(USA투데이)

12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포세이돈'(한국은 31일 개봉 예정)에 대한 현지 언론의 반응이다. 1억5000만 달러(약 1400억원)라는 거액을 쏟아부은 이 영화는 일찌감치 올해를 대표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 내 흥행순위에서는 개봉 2주차인 '미션 임파서블 3'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이만한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가 개봉 첫주 흥행순위에서 1위를 놓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포세이돈'의 부진은 리메이크의 한계에서 주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명한 고전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년, 감독 로널드 님)를 현대적으로 다시 만든 이 작품은 초호화 유람선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뒤집히고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원작의 유명세는 영화팬들의 관심을 끄는 데 도움도 됐지만 한편으론 제작진에 어떻게든 원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줬다. 줄거리가 널리 알려져 있는 것도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었다.

그래서 제작진이 선택한 것은 막대한 제작비와 첨단기술로 무장한 화려한 볼거리. 글자 그대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연기도 돋보였다. 그러나 볼거리에 치중하다 보니 원작에서 보여준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는 미흡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평가다.

등장인물의 면면은 크게 달라졌다. 원작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스코트 목사(진 해크먼). 그는 목사라는 위치임에도 신의 섭리보다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괴짜다. 재난을 당하자 기도보다는 행동으로 사람들을 구하려 하지만 대다수 승객은 그를 불신하며 거부한다. 몇몇 사람이 그를 따라나서지만 탈출 과정에서 의견이 맞지 않아 수시로 다툼을 벌인다. 이처럼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갈등, 때로는 추악하게 때로는 영웅적으로 드러나는 인간 본성 등이 원작에서 중요한 감상 포인트였다.

그러나 신작에선 인간적인 문제들이 원작보다 덜 중요하게 다뤄진다. 중심 인물은 소방관 출신으로 전직 뉴욕 시장인 램지(커트 러셀). 그는 딸 제니퍼(에미 로섬)의 약혼자 크리스천(마이크 보겔)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딸과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가족애라는 할리우드의 상투적인 장치로 이들은 결국 화해한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모성애가 등장하긴 하지만 관객에게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는 데는 역부족이다.

그 때문에 "진부함의 파도에 휩쓸린 대본으로 흠뻑 젖은 이야기"(USA투데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난의 원인에 대해서도 원작은 안전을 무시하고 돈벌이에만 급급해하는 인간의 탐욕에 주목했지만 신작은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만 표현하고 있다.

대신 웅장한 화면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신작에 매우 만족할 만하다. 34년 전에 나온 원작은 당시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재난 장면을 미흡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작은 현대 기술을 총동원해 볼거리만큼은 지금까지 나온 해양 재난 영화 중 최고를 자랑한다. 제작진은 길이 337m, 높이 68m의 초대형 선박 세트를 두 개나 만들어 하나는 뒤집히기 전, 다른 하나는 뒤집힌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사용했다. 물살에 휩쓸려 박살이 난 연회장에는 34만ℓ의 물을 쏟아부어 사실감을 높였다. 배우들은 직접 물속을 누비고 다니며 거의 모든 장면에서 대역 없이 스턴트 연기를 소화했다고 한다. "페터슨 감독은 디지털.첨단기술의 쇼맨십에서 매우 뛰어나다. '퍼펙트 스톰'(2000년) 등을 선보였던 해양 재난 영화의 전문가답다"(뉴욕 타임스)는 평가가 무색치 않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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