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출판|납·월북작가 작품 해금 "큰 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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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출판계에도 변혁의 강풍이 몰아친 한해였다.
일찌기 상상 못했던 여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북한기행문, 북한원전이 무더기로 쏟아졌고 납·월북작가 작품이 거의 다 해금, 출판됐다.
폐간됐던 잡지들이 속속 복간됐다. 신규창간도 엄청났다.
새로운 출판사가 무수히 생겼다.
또 오랫동안 안주의 틀 속에서 왜곡돼온 출판계의 도덕성 회복을 외친 「출판계 혁신 선언」도 터져 나왔다.
이 모두가 민주화 열기 덕이었다. 반면 극심한 불황이 내내 출판계를 괴롭혔다. 선거바람·올림픽바람이 독자들을 책과 덜어지게 했다.
급기야 올 상반기 도서발행 부수가 지난해보다 3백만 부나 감소한 「14년만의 이변」을 몰고 왔다. 그러나 이 기현상은 하반기 들며 정상으로 돌아서 11월말 현재 총 발행 부수는 1억5천2백25만 부로 전년보다 5·3% 늘었다.
또 「좌경서적」의 한계를 둘러싼 관과 출판계의 시각 차는 여전히 컸다. 이틈에 출판인의 구속·서적압수 등 아름답지 못 한 일들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납·월북작가 작품해금은「사건」의 맨 위에 서있다. 이들의 작품은 냉전의 덫에 걸린 가여운 예술이었다.
정부는 지난 1월 정지용·김기림의 작품집 납본필증을 발급함으로써 덫의 일부를 풀었다.
이어 올 7월 1백20여 명에 달하는 북으로 간 작가들을 대거 해금시켰다.
이로써 한국문학사·미술사·음악사의 온전한 복원이 가능해졌다.
해금조치가 내려지자 출판계는 정지용·김기림·이태준 등의 작품집과 납·월북작가 대부분을 망라한 대형전집들을 1백여 종이나 잇달아 발간했다.
금기의 벽을 허문 데는 북한원전도 못지 않았다.
북한의 역사·사상에서 문예물에 이르기까지 20여 종이나 나온 북한원전 출간 붐은 통일논의의 확산과 정부의 북한자료 공개 조치에 힘입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원전은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평가, 비판할 수 있는 통일자료』라는 목청 큰 주장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일부의 목소리가 맞붙어있다.
이런 한편으로 이념서적에 대한 출판탄압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1월 『마르크스의 철학사전』 출간과 관련, 도서출판 친구 대표 이상호씨가 구속되는 등 올 들어 8명의 출판인이 「좌경서적」시비에 말려 구속수난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이중 『자본론』을 출판한 이론과 실천사 대표 김태경씨는 법원의 구속 부적격판정으로 나오기도 했다.
민주화바람은 출협 내부에도 불었다. 지난 6월 탈세물의를 빚은 출협 권병일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출협 임원 11명의 사퇴를 시발로 급기야 원로·중견 출판인 86명의 「출판계 민주화 혁신 선언」으로 비화돼 자칫 출협 양분 위기까지로 몰고 갔었다.
이 선언은 무기력했던 출협에 큰 경종을 울린 자체의 내부진통이기도 했다.
외형상 출판계는 눈부신 양적 팽창을 거듭했다. 지난해 10월 출판자율화조치 이후 출판사는 1천7백여개 사나 늘었다. 10월말 현재 전국의 출판사는 4천3백여개 사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까지 거액의 프리미엄이 붙였던 출판사 등록증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잡지도 월간 이상만 치더라도 6백여개가 창간됐다.
여기에 『월간중앙』『참작과 비평』『문학과 사회』등 5공 때 폐간 당했던 잡지들이 속속 복간, 옛 독자의 사람을 다시 받고있다.
현재 전국의 잡지는 유·무가 합쳐 3천여개. 가위 「잡지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하고 있다.
한편 도서판매에서 특기할 점은 특수체험기의 호조였다. 『빨치산』『삼청교육대』『옥중기』등이 5공의 암울했던 상황과 연관돼 나갔었다.
또 하나 공산권과의 본격적인 문화교류의 첫 신호탄으로 소련과 사상처음 저작권 계약을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대사」였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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