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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세계적 명품 인정받은 완도 전복, 해외 소비자 사로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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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위지연 청산바다 대표 ‘바다의 명품’ 전복의 계절이다. 국내 전복의 70%는 전남 완도군에서 수확된다. 지난 7월 13일 세계가 이곳의 전복을 인정했다. 영어조합법인 ‘청산바다’의 양식 어가(漁家) 14곳이 아시아 최초로 전복에 대해 ‘ASC(Aquaculture Stewardship Council) 인증’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이 인증은 세계적인 명품 수산물에만 까다롭게 부여하기로 유명하다. 이번 인증은 국내 수산물 1호이기도 하다. 과연 이 인증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지난 4일 서울 가락동의 청산바다 서울지사에서 위지연 대표를 만나 ASC 인증 전복에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세계자연기금 ASC 인증 #획득한 국내 수산물 1호 #일본·홍콩 등 판로 확대

위지연 청산바다 대표가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가락몰 수산동 직매장에서 참전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청산바다는 ASC 인증 전복으로 국내외 판로를 넓히고 있다. 프리랜서 인성욱

위지연 청산바다 대표가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가락몰 수산동 직매장에서 참전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청산바다는 ASC 인증 전복으로 국내외 판로를 넓히고 있다. 프리랜서 인성욱

ASC 인증은 무엇인가. 
“ASC 인증은 2010년 세계자연기금(WWF)이 만든 제도다. 해양자원의 남획이나 무분별한 수산 양식으로 바다가 오염되는 것을 막고 지속 가능한 양식어업을 이어가는 것이 목적이다. WWF는 전 세계 회원 500만 명과 함께 멸종위기종 및 생태계를 보전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 등을 펴는 비영리 환경보전 기관이다. 사료, 수질, 생태계, 항생제 사용 여부 등 환경 관리부터 노동자의 권리·안전까지 철저히 보증한 수산물에 대해 ASC 인증마크(그림)를 부여한다. 인증 절차는 까다롭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신뢰성을 인정받는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ASC 인증을 받은 수산물을 공식 수산물로 지정했다. 해외 각지에서도 ASC 인증 수산물의 소비를 권장하는 추세다. ASC 인증 제품을 구입한다는 건 자연과 공생하는 환경에서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없이 윤리적으로 생산한 제품을 소비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인증으로 우리나라 참전복은 뉴질랜드의 무지개전복, 호주의 검은입전복, 남아공의 펠레몬전복과 함께 세계 4대 ASC 인증 전복에 올랐다. 특히 참전복이 ASC 인증을 받은 건 세계 최초다. ASC 인증마크는 제품 포장지에 새겨진다. 소비자는 인증마크를 보고 구입하면 된다.”
ASC 인증을 신청한 계기는. 
“완도군에선 1980년대부터 전복 양식업이 성행했다. 양식업이 대규모로 확대되면서 전국적으로 전복 생산량이 늘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소비는 늘지 않았다. 공급량이 많다 보니 제때 팔리지 못한 전복이 경매시장에 싸게 많이 공급된다. 가령 산지에서 어민에게 직접 전복을 사면 1㎏당 1만원인데 경매시장에선 8000원에 불과한 셈이다. 급기야 다수의 바이어는 ‘산지에서 전복을 비싸게 사느니 경매시장에서 싸게 사는 게 낫다’며 돌아섰다. ‘비싼 전복은 다르다’는 걸 입증할 공신력 있는 근거가 절실했다. 수출에 박차를 가한 ‘청산바다’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해양수산부의 ‘한국 전복 수출 선도 기업’에 선정돼왔다. 2015년 고객사이면서 일본 최대 유통그룹인 ‘이온그룹’(미니스톱의 모회사)의 마쓰모토 수산총괄부장이 ‘참전복에 ASC 인증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마침 이온그룹은 공인된 제품만 취급하는 ‘피시바톤’이라는 코너를 마트 한쪽에 마련하려던 참이었다. 그 제안을 계기로 ASC 인증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2020 도쿄 올림픽 때 ASC 인증 수산물이 사용된다는 점은 ASC 인증을 받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청산바다’에 속한 14개 어가와 뜻을 모아 인증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인증 과정이 험난했다고 들었는데. 
“한국에서 ASC 인증 전문가를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 ASC 인증을 받은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청산바다’가 불모지를 개척해야 했다. 해수부에서 ASC 인증을 지원한다고는 했는데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WWF코리아의 문을 두드렸다. ASC 인증에 대해 한국의 대기업도 관심 갖지 않았는데 전남 완도군의 어민들이 받고 싶어 한다니 놀랐다고 하더라. 2016년 WWF코리아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ASC 인증 컨설팅에 착수했다. 인증 심사를 위해 필요한 내용이 담긴 모든 문서는 영문으로 작성했다. 직접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번역해야 했다. ASC 인증의 심사 원칙은 7가지다. 그 심사 원칙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전기가 ‘찌리릿’ 하고 올랐다. 전복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양식장이 허가된 곳인지, 양식장 근처에 사는 수달을 보호하는지, 이웃 간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을 입증해야 한다. 특히 노동 학대는 없는지, 휴일 수당은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WWF 심사위원이 노동자를 직접 인터뷰할 정도다. 전복의 품질뿐 아니라 서식 환경, 인권까지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향후 참전복을 계속 양식할 것이란 가정에서 이 인증을 반드시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인증 심사를 신청한 지 2년 반 만인 지난 7월 ASC 인증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WWF로부터 e메일로 받았다. 너무 힘든 과정을 거쳤기에 처음엔 합격했다는 소식에도 믿지 않았고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회신을 하지 않았더니 WWF에서 따로 연락이 왔다. ‘정확한’ 합격 소식에 어가 14곳과 함께 환호를 질렀다.(웃음) 연간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복이 1만8000t이다. 이 중 70~75%가 완도군에서, 나머지는 강원도 고성, 경남 통영 등지에서 수확한다. 완도군에는 전복을 캐는 어가가 약 4000군데 있다. 그중 이번에 인증 받은 어가는 단 14곳이다. ‘청산바다’가 연간 800t을 유통하는데, 200t만 ASC 인증을 받았다. 그만큼 희소성이 있다.”
해외 인증 사례는 어떤가. 
“해외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을 때 메뉴판에서 ‘ASC(양식한 것)’나 ‘MSC(자연산)’ 표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중국 마트의 냉장 쇼케이스에도 인증마크가 있다. 이처럼 해외에선 이 마크가 부착된 제품이 흔하다. 일본 이온그룹은 2020년까지 취급 수산물의 10% 이상을 ASC 인증 제품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글로벌 호텔체인 하얏트호텔은 취급하는 수산물의 15% 이상을 ASC 인증 제품으로 구입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글로벌 유통 브랜드 ‘까르푸’는 냉장 수산물을 ASC 인증 상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 65개 호텔·리조트를 보유한 고급 호텔그룹 ‘샹그릴라’와 미국 참치 전문점 ‘밤부스시’는 메뉴판에 ASC 인증 수산물을 별도로 표기한다.”
이번 인증을 통해 얻은 효과는. 
“이온그룹은 간사이·관동 등 일본 일부 지역에서 특별한 날을 정해 ‘청산바다’의 활전복을 판매했다. 이번 인증을 계기로 판매 횟수를 연 5회 더 늘리기로 했다. 또 ‘청산바다’가 요청하면 언제든 ASC 인증을 받은 전복 가공식품을 11월 블랙프라이데이 때 마트에서 팔기로 했다. 통조림·전복장 등이다. 홍콩은 수입산 전복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곳이다. 홍콩 3대 식품유통 회사인 윌슨그룹은 이번 인증을 계기로 이달 가공식품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추석 명절엔 홍콩에서 가공식품을 판매하기로 했다. 인터컨티넨탈호텔도 ‘청산바다’의 인증 전복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하얏트·힐튼 호텔도 긍정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ASC 인증을 받기까지 정부 각 부처·기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해수부에서 ‘수출 선도 기업’을 육성해준 덕에 글로벌 표준이 중요한 이유를 알게 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ASC 인증 선진국인 일본을 견학할 때 직접 직원을 파견해 안내했다. aT·한국수산회·한국수산무역협회는 인증 우수 사례집을 제작했다. 아직까지는 인증을 받기 위한 자부담이 크다. 인증 심사비용으로 2000만원을 지원해준다는 규정이 있지만 외부에서 컨설팅을 받는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그런데 ‘청산바다’가 인증을 신청했을 땐 국내 외부 컨설팅 업체가 없었기에 ‘그림의 떡’이었다. 지난해 8월 WWF코리아의 김경원 해양총괄책임부장을 청산바다환경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섭외했다. ‘외부’가 아닌 ‘내부’ 컨설팅이어서 정부 지원은 받지 못했지만 ASC 인증을 받아냈다. ‘청산바다’는 인증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이제 이 연구소를 통해 인증 희망 어가를 도울 생각이다. 2016년 8월부터 현재까지 완도군의 협조로 ASC 인증의 중요성과 절차를 알리기 위해 월 1회 무료로 강의를 하고 있다. 전복 양식장의 ASC 인증 어가를 확대하려면 가공기계 지원 등 어가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향후 어가 50곳의 ASC 인증이 목표다. 이 인증의 유효기간은 3년이다. 기존에 이 인증을 받은 어가가 재인증받는 데도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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