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있는 손녀가 사돈 닮았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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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右)와 김영남씨의 어머니 최계월씨(左)가 16일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강당에서 만났다. 최씨가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운데는 통역. 김태성 기자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요코타 시게루)

"아들이 북한 사람과 결혼했으면 사돈끼리 만나지도 못했을 텐데…."(김영자씨)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부친인 요코타 시게루(73)가 16일 딸의 남편인 김영남씨의 어머니 최계월(82)씨와 상봉했다. 북한에서 김영남씨와 메구미가 결혼한 지 20년 만이다. 사돈끼리의 만남은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용)의 주선으로 이날 오후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건물 2층 대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최씨는 시게루가 회의실로 들어서자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다가가 반갑게 사돈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은 통역 없이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자식을 북한에 납치당한 한을 똑같이 갖고 있어 이심전심인 듯했다. 시게루가 "딸의 남편이 김영남씨라는 사실이 밝혀진 게 다행"이라며 운을 떼자 최씨는 아들 모습이 떠오르는 듯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시게루는 최씨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시게루는 "우리 딸은 사망했다고 들었지만 손녀 혜경(18)이는 아주 예쁘고 훌륭한 숙녀로 자랐더라"며 "그렇게 큰 데는 김영남씨의 공이 컸다고 본다"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김영남씨의 누나 영자(48)씨는 "혜경이가 누구를 닮았나 했더니 외할아버지의 편안한 얼굴 그대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게루는 "영남씨가 감금돼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힘들지는 우리가 잘 안다. 희망을 잃지 말라"고 위로의 뜻을 전하자 최씨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또 메구미의 남동생 데쓰야(37)가 "우리 가족은 지금도 메구미가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영남씨 가족에게도 그 목소리가 들릴 것으로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난다"고 하자 최씨와 영자씨도 흐느껴 울었다.

메구미의 가족은 납북자의 송환 촉구를 상징하는 파란 리본이 달린 인형을 최씨에게 건넸고, 최씨 가족은 찻잔으로 답례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한국에 오지 못한 메구미의 어머니 요코타 사키에(70)는 편지로 인사를 전하면서 "김영남씨가 고등학생으로 납치됐다고 했는데 우리 딸도 중학생 소녀였다"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함께 느낀다"고 적었다. 두 가족은 기자들과 만나 "직접 만나보니 가족이란 생각이 훨씬 더 든다"(김영자), "TV를 통해 봤을 때와 느낌이 달랐다. 눈물이 저절로 난다"(데쓰야)며 정을 표시했다. 어머니 최씨는 "아들이 북에서 초청한다면 기쁘게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다.

최성용 대표는 "사돈끼리 처음으로 만났지만 기쁨보다는 비극에 가깝다"며 "이번 만남이 단순히 가족 간의 상봉이 아니라 납북자 송환을 촉구하는 힘을 모으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구미 가족은 17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tskim@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5월 17일자 16면에 게재된 사진설명 중 '가운데는 메구미의 동생 데쓰야'를 '통역'으로 바로잡습니다. 데쓰야씨는 현장에 있었지만 사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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