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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칼럼] 이제 경제성장 만능에서 국민행복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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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호 35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행복한 사람의 뇌에선 잠시 즐거울 때보다 훨씬 다양한 현상이 벌어진다. 우선 보상중추에선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사랑하는 연인과 맛있는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 뇌에선 도파민 파티가 열린다. 즐거움이나 쾌락은 행복감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측정할 수 있는 것 과대평가하고 #측정 못 하는 건 과소평가하는 경향 #GDP를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은 #우릴 행복하지 않게 만들 위험 있다 #그래서 신경과학자들도 행복을 #해부해보려는 첫걸음내딛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즐거움 그 이상이다. 편도체를 비롯해 변연계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내 삶의 만족감을 고양시킨다. 우울감에 빠지지 않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우리를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엔도르핀 역시 행복감에 기여한다. 열심히 일하고 나서 흘리는 땀과 함께 엔도르핀은 우리에게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진통제 역할을 한다.

옥시토신도 제 몫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편안하고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옥시토신은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타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하거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행복에 중요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맺기 없이는 행복에 도달하기 힘들다. 행복은 나에 집중하는 시간과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 맺기 모두를 필요로 한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행복은 즐거움이나 안정보다 훨씬 복잡한 개념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신경과학 연구자들은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과학적으로 해부하고 분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유는 하나다.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행복을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다.

국가의 존재가치도 국민행복에 있다. 뜻맞는 사람들과 그저 무리 지어 모여 살지 않고 국가라는 체제를 운영하는 건 그것이 우리의 안녕과 행복에 더 크게 기여하리라 믿어서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예산을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경제성장이었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난을 탈출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스털린의 역설’이 말해주듯, 물질적 풍요로움이 행복을 보장해주진 못한다. 국내총생산(GDP)이 낮을 때에는 소득이 늘어날수록 행복감도 늘어나지만, 어느 정도 생활수준이 되고 나면 더 이상 경제성장이 국민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은 비슷한 수준의 GDP를 가진 나라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 중 하나다. 직장인들은 사회적 자아로만 생활하다가 일과 삶의 균형을 잃어버렸다. 건강도, 가족관계도, 지인들과의 따뜻한 우정도,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건강한 질문도 책상 위에 쌓인 일더미 속에 묻혀 버렸다. 그래서 직장이라는 우산에서 나오면, 나 혼자서 세상이라는 모진 폭풍우를 이겨낼 능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치킨집이나 편의점을 차리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 힘든 존재로만 늙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가 성장한다 해도 그 과정이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면 결국 그것이 경제 성장에 방해가 된다.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증폭되며 신뢰 같은 사회적 자산을 망가뜨린다. 결국 어떻게 경제를 성장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며, 그 판단 기준과 최종 목표는 국민행복이어야 한다. 국민이 행복한 방식으로 경제도 성장하고 정책들도 집행돼야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경제성장보다 국민행복이 우선’이라는 이 자명한 명제를 그동안 간과해 왔던 것일까?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최고마케팅 책임자 존 헤이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고, 측정할 수 없을 것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성장은 GDP라는 하나의 숫자로 표시 가능하며 측정 가능해서 강력한 목표의식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 행복에 매우 중요한 쾌적한 환경이나 창의적인 교육, 국민 건강, 혹은 민주주의 같은 중요한 지표가 거의 반영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면서 경제성장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국민총행복’ 같은 행복지수는 부탄 같은 작은 나라의 독특한 시도가 아니라, 유럽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개념이 되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조셉 스티글리츠, 아마티아 센, 쟝 폴 피투시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 개발에 나선 바 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GDP는 틀렸다』(동녘, 2011)는 개발도상국이 적절한 규제 없이 환경 훼손이 심한 광산개발권을 저가의 사용료를 받고 허가한다면, GDP는 증가하겠지만 국민들의 복지는 저하되는 예들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재화를 소비하는 대신 여가를 선용하면서 지식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여 보겠다고 하면, 지금의 GDP 계산 방식은 이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로 간주할 것이다.

GDP를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은 우리 삶을 행복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게 만들 위험이 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국민행복이나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얻어내야 할 목표는 아니다. 측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소중함을 알아채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 그래서 신경과학자들도 행복을 해부해보려는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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