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북한 인권의 새로운 접근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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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동안의 북한 인권 관련 회의가 대부분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 회의는 북한 인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의 표출과 함께 문화.예술.스포츠 등의 매체를 통한 공감대 형성, 그리고 실질적인 인권 개선의 방법을 모색하는 접근법을 동시에 시도하였다. 그래서 이번 회의를 지켜본 많은 사람은 21세기형 새로운 형태의 인권운동의 가능성이 여기서 출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미국.유럽 등 각국 정부 대표, 세계 각지의 NGO 인권활동가의 의견은 너무도 다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인권에 관심있는 디자이너.영화감독.음악가 등이 시도한 문화적 접근은 다른 의견의 간격을 좁히는 역할을 했다. 특히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씨의 증언과 아리랑 연주는 참석자 모두를 하나로 결속시켰다.

이번 회의에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특별한 성토문이나 결의문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참석자 모두는 북한 인권과 난민문제 해결을 위해선 성토와 고발을 넘어선 공동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인권이란 투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매우 신선한 접근법임에 틀림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 인권문제는 너무 정치화되어 있다. 북한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은 친미.보수주의자로 간주되고, 진보주의자는 이들을 비판하고 북한의 인권 침해에 침묵해 왔다. 특히 미국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갈등은 더욱 커져 왔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라는 점을 양측 모두 인정하면서도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첨예한 정치적 대립이 우선시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를 통해 북한에 매우 비판적인 인권운동가도 보다 포용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인권운동가들은 인도적 지원의 실질적 혜택이 북한 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한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공감과 현실적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표시하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소위 진보주의자도 침묵 아닌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다른 방법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한국의 인권대사도 북한 인권에 대한 우려를 처음으로 표명했다.

국제권력정치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는 노르웨이에서 회의를 개최한 것은 북한 인권 논의가 정치성을 배제하고 진행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는 약하지만 인권 등 소프트 파워 외교의 강국인 북유럽에서 보여준 세계시민사회의 회동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22개국에서 참석한 500여 명은 각국 정부 대표뿐 아니라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인권활동가.언론인.학자 등 세계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번 회동은 NGO가 주최한 국제회의에 정부 대표가 참석해 의견을 표명하고 서로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감대를 만드는 특이한 형태를 보였다. 바로 인권은 초국가적인 것이며 그 주체는 세계시민사회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실례인 것이다.

21세기 인권운동은 변하고 있다.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문 채택의 핵심 주체는 NGO였다. 인권 규범 형성 과정의 중심에도 NGO가 있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 이제 우리의 대북한 인권 접근법도 달라져야 한다. 세계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하고 세계시민사회에 힘을 실어줘야 하며 그 규범 창출에 동참해야 한다. 인권 개선의 주체는 정치적 선동가가 아니라 시민사회다. 그리고 그 성취는 20세기형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21세기형 초(超)국가 네트워크의 형성을 통해 가능하다.

서창록 고려대 교수·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