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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족발 ‘망치 폭행’ 징역 2년6월 … 살인미수 혐의는 무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임대료 분쟁의 당사자인 건물주를 상대로 망치를 휘두른 서울 서촌 ‘본가궁중족발’ 사장 김모(54)씨가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른바 ‘궁중족발 망치 폭행’ 사건의 최대 쟁점이었던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재판에 배심원단으로 참여한 일반 국민 7명이 김씨의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전원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 배심원 평결 따라 #“건물주 살해할 의도 증명 부족” #일각 “임대 갈등에 비중 둔 판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는 6일 살인미수·특수상해·특수재물손괴 등 3가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과 함께 쇠망치 몰수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넘어뜨리고 머리 등을 때렸으나 망치를 빼앗긴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이를 다시 찾으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건물주를 살해할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 5일 “상당한 기간 사회와 격리해 재범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김씨는 지난 6월 서울 청담동 골목길에서 자신이 운전하는 차량으로 건물주 이모(60)씨에게 돌진한 뒤 이씨의 머리와 몸에 망치를 휘둘렀다. 자신의 차량으로 건물주 이모(60)씨를 들이받으려다가 길을 가던 행인 염모씨를 친 혐의도 기소 내용에 포함됐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7명의 배심원은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선 전원 무죄로 판단했지만, 그 밖의 두 가지 혐의(특수상해·특수재물손괴)에 대해선 전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이와 함께 “김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다수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평결대로 김씨에게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법조계에선 김씨 변호인단의 재판 전략이 상당 부분 주효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을 앞두고 일반 국민이 배심원단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재판정에서 변호인단은 “피고인 입장에선 ‘99’를 가진 사람이 ‘1’을 빼앗는 듯한 억하심정이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배심원들에게 호소했다.

한 전직 지검장 출신 변호사는 “이런 재판은 재판부가 배심원단의 평결을 무시하기 어렵다”며 “살인미수 혐의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8년 도입돼 지금까지 진행된 국민참여재판(2267건) 가운데 93.1%(2112건)에서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이 일치했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이경)는 “기존 판례에 비해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 부분을 다소 좁게 해석한 판결이 아닌가 한다”며 “김씨의 행위 자체뿐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라든지 임대인과 건물주 간 갈등에 다소 높은 비중을 둔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건물주 이씨와 족발가게 사장 김씨 간 갈등은 2015년 12월 새로 건물을 매입한 건물주 이씨가 월세를 297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약 4배 올리면서 비롯됐다.

건물주 이씨는 김씨를 상대로 한 건물 명도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지난 6월 ‘망치 사건’ 직전까지 족발가게 사장 김씨와 그를 지지하는 일부 시민단체가 12차례에 걸쳐 법원의 강제집행을 실력 저지하기도 했다.

판결 직후 김씨의 부인 윤경자씨는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애초에 법 자체가 평등했으면 이런 일 자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과 일부 진보 시민단체도 윤씨와 자리를 함께했다. 윤씨는 “잘못된 걸 알면서도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지 않은 무능력한 정부와 무책임한 국회의원, 그들도 이번 사건의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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