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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정상으로 기능 하는가|김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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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13대 첫 정기국회가 l7일이면 막을 내린다. 그 동안 청문회 열기로 들떠 있던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상임위원회 활동을 전개하고있다. 그러나 국정감사 후 두 달이 되었는데도 국정감사 결과보고서 하나 작성하지 못했고 악법개폐 작업도 지지부진한 것이 안타깝다. 국회가 국회 본연의 입법활동이나 국정감시작용을 소홀히 하고 청문회활동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은 답답하다.
국회의 5공 비리 특위나 광주특위·문공위가 청문회를 텔리비젼으로 생 중계함으로써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한 바도 크다. 청문회의 생중계로 국민들의 정치 참여도가 높아졌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감시기능이 강화되었고, 선동적 정치문화를 순화시켰고, 정치적 갈등을 해소시키는 등 순기능을 다했다.

<입법·정책입안 뒷전>
그러나 다른 면에 있어서는 TV재판-마녀재판-인민재판이라고까지 불리게 되는 비극적 현실을 초래했고 정치가·기업가. 관료들의 권위상실을 가져왔고, 당리·당략을 위한 신문으로 정치적 이미지를 손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가져오는 등 역기능도 했다.
사실 청문회가 국정감사와 아울러 5공 비리 등 과거의 사실규명과 단죄 쪽으로 기울 때 그 기능은 잘못 흐르기 쉽다.
청문회나 국정 조사에는 의혹조사와 같은 과거의 사실 조사 규명 기능도 없는 것은 아니나 본래적 기능은 앞으로의 입법과 정책통제를·위한 자료수집에 있다. 보다 좋은 입법을 위해, 보다 좋은 정책결정을 위해 국회가 입법자료를 수집하고 구 악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정책자료를 수집해 입법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과거의 비리조사나 사실 규명은 검찰의 기능이요, 유·무죄를 가리는 것은 법원의 기능이다. 국회가 검찰과 법원의 기능을 뺏어 청문회에서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사이 청문회에 임하는 일부의원은 사실신문을 하지 아니하고 강의나 훈계조가 있는가하면 때로는 논고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판결까지 스스로 내리고 있는데 이는 원님 재판 격이요, 근대 입헌정치의 본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법조경력이 없는 의원 중에는 증인 신문 기술이 사법관 시보보다 못해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정치적 쇼를 연출함으로써 국회의원 자질을 의심케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로써 전체국회의원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고 국회와 정치자체에 대해 혐오감을 주는 사례 또한 없지 않다.

<청문회운영 개선돼야>
국회 청문회에서의 사실 규명에는 한계가 있다. 증인에게는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이 있으며 의원에게는 강제수사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비공개 청문회가 보다 효율적일 수도 있으며 특별검사나 검찰 특수부에 의한 밀실 수사가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이제까지의 청문회는 그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전 전 대통령의 사과·헌납·낙향이라는 성과를 얻어냈기에 일방적으로 매도할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의 선동정치에 대해서는 냉엄한 국민의 감시로 경종을 울렸고, 공부하지 않는 국회의원의 자질평가를 가능하게 한 점에서 청문회의 공개 제도는 계속돼야 한다. 청문회의TV생중계는 현재와 같은 반복 질문이나 저질 운영이 계속되는 경우 시청률이 떨어져 국민의 관심 밖으로 사라질 날도 멀지 않을까 걱정된다.
국회청문회는 과거 사실에 대한 청문에 그치지 말고 현재와 장래의 국정에 대한 청문이 이루어져야 한다.
신임총리의 국회 동의에 앞서 신임 총리에 대한 앞으로의 정책방향에 대한 청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포드」부통령 임명 때나 대법관 임명 때 활발한 청문을 벌인 끝에 임명동의를 했고 중요 공무원 임명 동의 때마다 청문회를 열고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사동의안 처리의 경우 찬반토론조차 하지 않는 관례가 있는데 이는 국정공개의 원칙상 지양돼야 하며 인사동의 청문회야말로 TV생중계가 행해져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어야할 것이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입법활동에 대한 TV생중계가 없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요, 국민의 비판 감시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국회는 과거의 청산을 피하여 악법개폐활동을 벌여야 하는데 그 활동이 부진한 것은 법률 개폐특위활동이 TV생중계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국회는 과거의 청산보다 미래의 설계가 더 급한 만큼 지방자치법 개정·인권관계법 정비·민생복지입법을 위한 법률 개폐 특위를 활성화하고 상임위활동도 적극화해야 하겠다.
과거 청산을 위한 청문회 활동 때문에 미래 지향적인 상임위활동이 위축되고있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TV생중계에 들떠 있는 특위활동도 국민에게 식상 감을 주지 않기 위해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할 것이요, 국회 본연의 미래 구성적인 입법활동을 국민에게 생 중계해 주어야할 것이다. 국회 의사의 생중계는 문제가 많아 선진국에서도 채택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리 나라도 선진국의 경험을 살려 공개정치가 가능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미래 위한 설계가 급해>
청문회 열풍에 가려 국회의 예산안 심의라든가 입법활동, 국정비판 감시작용이 뒷전에 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여야는 국회본연의 기능을 회복해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 주어야 한다. 분풀이·스트레스 해소기능은 어느 정도 된 것으로 보고, 보다 창조적인 민주화작업을 위해 여야국회의원들은 중지를 모아주기 바란다.
과거 지향적인 청문회만 하고 미래 설계 적인 상임위원회의 활동이 미진할 경우 국민은 대표기구인 국회를 불신하고 직접 민주정치를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선동적인 직접민주정치를 막기 위해 국회는 대의정치의 장점을 보여주어야 하겠다. <서울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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