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비해 홀대"…종합상사 불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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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히 금융혁명으로 불릴 만한 금리 자유화가 불완전하게나마 실시된 지 1주일을 맞고 있다. 금리 자유화라 해봤자 정부가 정해주던 금리를 은행끼리 담합하여 인상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래도 예전과는 다른 풍경이 금융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번 금리자유화조치에 따라 가장 불만이 많은 쪽은 대기업들. 이들은 시중은행들이 기업체 종합평점을 기준으로 차등금리를 적용하고 외환수수료 등 대 은행 기여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명성(?)에 비해 훨씬 높은 금리를 적용 받게 되자 거센 반발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선경·대우·럭키금성 등 종합상사들은 외환부문 기여도는 높으나 평점이 낮아 종전보다 0.5% 포인트 높은 12%를 적용받게 된 경우.
이에따라 우대금리를 적용받지 못하게된 상당수의 대기업들이 주거래 은행측에 「이렇게 섭섭하게 대할 수 있느냐」며 항의하는 사례마저 비일비재한 실정.
○…시중은행들의 새 대출금리 운용체계는 사실상 은행간 담합에서 출발했으나 금융가에서는 이 같은 공조체제가 얼마가지 않아 깨질 것으로 전망.
특히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이 금리 담합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부실채권이 적은 일부 후발 은행들이 「따로 뛰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금융계는 금리 담합문제와 관련,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셈.
담합이 깨어질 것에 대해서는 은행간 반응이 서로 다른데 부실채권이 많은 은행일수록 전전긍긍하는 반면, 신한은행 등 부실이 적은 은행이나 국민·주택은행 등 수신 신장세가 좋은 은행들은 비교적 느긋한 자세.
○…은행권은 금리 자유화조치와 함께 실시된 1·2 금융권간의 수신금리 체계조정이 은행권에 다소 유리하다고 보고있으나 증시가 지속적인 활황을 보임에 따라 은행에 들어올 돈이 증시 쪽으로 몰려가지 않을까 우려.
시중은행들은 증시 활황에 따라 그렇잖아도 최근 일부 예금이 증시 쪽으로 빠져 나가고있는데 이번에 자유저축예금·저축예금 등의 금리가 1% 포인트 내림에 따라 이 같은 자금이탈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들.
은행들은 대신 기업자유예금이 신설되고 기업적금이 허용됨에 따라 기업쪽 수신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있다.
○…금리자유화 이후의 수신동향을 보면 기업 예금을 중심으로 한 은행예금의 증가와 자기발행 어음을 중심으로 한 단자수신의 감소가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새로 늘어난 은행의 저축성예금은 1천 4백 67억원에 달했는데 그중 89.9%인 1천 3백 19억원이 새로 생긴 「기업 자유예금」이었다.
기업의 단기 여유자금을 은행에서 굴릴 수단이 새로 생겼으니 예금이 느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새로 느는 기업 자유예금의 상당액이 과거의 「양건예금」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리 자유화와 함께 과거규제의 대상이 되던 양건예금이 이제 떳떳하게 금융기법의 한 수단으로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되고, 뒤집어 말하면 실제 은행수신의 대중을 이루는 저축성 예금은 금리 자유화 이후 별로 늘지 않았다는 분석도 가능.
한편 단자사 여신의 주요한 「꺾기」 수단이었던 단자사 자기발행 어음의 발행액이 5∼7일간 8백 67억원이나 준 것을 보면, 자금이 풍족한 제2금융권에서는 금리 자유화 이후 은행과 경쟁하기 위해 양건예금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금융권에서의 실세금리는 종전에 비해 그만큼 떨어지고 있는 셈.
○…금리 자유화 첫 1주일은 일단 큰 부작용 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금융계 관계자들의 평.
금리가 자유화되면 실세금리의 단기간 급등이 우려되었으나 투기억제책에 따라 부동산 자금이 제도금융권으로 환류하고 무역수지 흑자에 힘입어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좋아져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고.
문제는 오히려 금융계 내부에 있다는 지적인데 적잖은 은행사람들이 이번 금리 자유화조치를 경쟁차원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금리변동(사실은 금리인상)에 불과한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어 진정한 금리자유화가 되려면 은행원들의 의식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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