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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특별공급 노려…대리임산부 모집하고 증명서 위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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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특별공급 제도의 허점을 노려 불법으로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뒤 되팔아 수익을 챙긴 청약통장 모집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관련 서류 위조는 물론 다자녀·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노려 대리 임산부까지 동원했다.

경기남부경찰, 청약통장 모집조직 2곳 적발 #조직원·청약통장 판매자 등 315명 검거, 4명 구속 #청약통장 매입해 42건 당첨받은 뒤 되팔아 60억 수입 #임신진단서, 재직증명서 위조하고 대리임산부도 모집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4일 주택법 위반과 주민등록법 위반 등 혐의로 청약통장 모집조직 총책 A씨(38)와 B씨(35) 등 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을 도운 청약통장 모집책, 분양권 전매알선 브로커, 광고책 등 16명과 이들에게 청약통장을 판 295명 등 311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청약통장 모집조직 조직도.[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청약통장 모집조직 조직도.[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A씨와  B씨 등은 2014년부터 최근까지 타인의 청약통장을 매입한 뒤 관련 서류를 위조해 아파트 분양에 당첨되면 이를 되팔아 거액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사들인 청약통장만 295개. 이를 이용해 경기 판교·동탄, 서울 영등포·송파 등 전국 인기 분양지역의 특별공급분 253건, 일반공급분 42건에 당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분양권을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 거둬드린 수익만 60억원 상당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A씨는 당첨된 아파트 분양권을 되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지인인 B씨 등을 끌어들였다. 이후 '청약통장을 산다'는 글을 올리는 '광고책', 인기 지역으로 위장 전입한 뒤 매입한 청약통장으로 대리 신청하는 '모집책', 당첨된 분양권을 파는 '분양권 전매 브로커', 각종 서류를 위조하는 '위조책'으로 나눠 범행을 저질렀다,

아파트 분양 당첨 과정[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아파트 분양 당첨 과정[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먼저 광고책들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시스템(SNS)에 "청약통장을 소유하고 있다면 최대한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글을 올리고 연락을 한 사람들에게 통장 1개당 3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를 주고 샀다.

이들이 주로 노린 것은 특별공급 물량이다. 국토교통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라 신혼부부·다자녀·노부모 부양·탈북민·장애인 등 정책·사회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이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일반 청약자와 경쟁하지 않고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전체 물량의 10%를 특별공급으로 배정하는 것이다.

지역 분포도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역 분포도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일반 공급보다 당첨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A씨 등은 매입한 청약통장(259개) 대부분을 특별분양에 신청해 257건이나 당첨됐다.
유형 별로는 신혼부부가 91건으로 가장 많았고 장애인(80건), 다자녀(45건), 탈북민(7건), 장기 군 복무(1건), 세종 행정 도시(1건) 등 다양했다.

A씨 등은 주택청약제도가 증빙서류와 자격요건·가점 사항을 청약 신청을 할 때만 형식적으로 확인하고 당첨 후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점을 노렸다. 이후 관련 서류를 위조하고 위장 전입까지 하며 당첨에 열을 올렸다.
이들은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경우 임신을 하면 당첨 가능성이 높은 점을 노려 임신진단서를 위조해 제출하기도 했다.

"30만원을 주겠다"며 실제 임산부를 섭외해 산부인과에서 청약명의자의 이름으로 대리 진료를 받게 한 뒤 임신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위조한 임신진단서만 15건이고 대리 진료로 제출한 것만 4건이다.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 인터넷으로 전입 신고를 할 수 있는 정부 민원 포털 사이트인 '민원24'도 악용했다. 충청도에 거주하는 청약통장 명의자를 부산 지역 아파트 당첨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민원 24'를 이용해 부산으로 허위 전입 신고를 한 것이다. 이런 위장 전입만 105건이 적발됐다.

청약통장 모집조직이 특별공급에 당첨되기 위해 위조한 임신진단증[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청약통장 모집조직이 특별공급에 당첨되기 위해 위조한 임신진단증[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이들은 관련 서류를 위조하기 위해 위조책 C씨(구속)와도 손을 잡았다. C씨는 실제로 발급받은 인감증명서와 임신진단서 등의 원본 문서를 토대로 인감도장, 병원 직인, 의사 도장 등을 전문적으로 위조했다. C씨가 A씨 등에게 제공한 위조 도장만 85회에 달한다.
경찰은 C씨가 다른 범죄에도 위조 도장 등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A씨 등은 매입한 청약통장과 위조서류 등으로 프리미엄이 높은 전국의 인기 분양지역을 노렸다. 당첨된 지역으로는 화성 동탄2신도시가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평택 고덕(34건), 서울 여의도·송파(19건), 경기 하남 미사(11건), 경기 성남 판교(3건) 등 서울·경기 198건, 부산 43건, 세종 16건, 경남 13건, 제주 2건 등이다.
이들은 이런 수법으로 당첨된 아파트 분양권을 최대 1억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팔았다. 이를 위해 분양권 전매 브로커까지 고용했다.
A씨가 함께 범행하던 B씨에게 노하우를 알려주며 "독립을 해라"고 권해 조직은 2개로 늘어났다.

청약통장 모집조직이 위조 도장등으로 만든 가짜 서류[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청약통장 모집조직이 위조 도장등으로 만든 가짜 서류[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찰은 이들에게 청약통장을 판 295명의 명의와 공급계약이 체결된 257건의 분양주택 명단을 국토교통부에 전달해 신청 지위를 무효로 하거나 이미 체결된 주택 공급계획을 취소하도록 통보했다. 유관기관과 공동 프로그램을 개발해 청약 신청·접수 단계부터 제출된 서류와 청약자격·가점 사항의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도 요구했다. 국세청에도 이들이 불법 전매로 취득한 불법 수익을 환수하도록 통보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부동산 범죄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 박탈은 물론 부동산 가격까지 상승시켜 국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는 만큼 지속해서 단속할 것"이라며 "A씨 등에게 적용한 주택법엔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아 주택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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