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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서·딸이라서’…시험지 유출에 흔들리는 ‘교육 百年之大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계속되는 '시험지 유출' 흔들리는 '교육백년지대계' 

시험지 유출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숙명여고에 들어서는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 관계자. [연합뉴스]

시험지 유출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숙명여고에 들어서는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 관계자. [연합뉴스]

학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시험은 공정하게 치러진다’는 믿음이 깨지면서다.
교무부장이 자신의 쌍둥이 딸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서울 숙명여고는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서울시교육청이 감사를 통해 “(시험지) 유출 개연성은 확인했지만 물증을 찾지 못했다”고 밝힌 데 따른 조치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교육청 감사자료에 대한 분석을 마치는 대로 교무부장 A씨와 교장·교감 등에 대한 수사에 나설 계획이다.

교육청 등에 따르면 교무부장 A씨의 쌍둥이 딸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지난해 각각 전교 59등과 121등의 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올해 나란히 문·이과 1등을 동시에 차지했다. 이같은 '성적 급상승'의 배경엔 시험지 유출 사건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교육청은 지난달 16일부터 약 일주일간 특별감사를 진행했다.

'예쁘니까' '성적 욕심에'…각양각색 '시험지 유출' 사유 

잇딴 '시험지 유출 사태'로 인해 학교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잇딴 '시험지 유출 사태'로 인해 학교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일선 학교에서 시험문제 유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엔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기말고사 시험지가 유출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이 학교의 행정실장이 한 학부모에게 시험지를 유출한 정황을 파악했다. 행정실장이 시험지 원본을 복사한 뒤, 복사본 42장을 해당 학부모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이 학부모는 시험지 편집해 아들에게 건넨 뒤 '족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광주지검은 시험지 유출 사건에 연루된 행정실장과 학부모를 최근 재판에 넘겼다.

지난해 11월엔 충남 예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e메일을 통해 한 학생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이 교사는 자신의 제자인 여고생에게 “너는 예쁘니까 시험 문제를 미리 보내준다"며 시험지를 유출한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새벽 몰래 학교 잠입해 시험지 훔치기도 

학생들이 직접 시험지를 훔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7월 전북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생긴 일이다. 이 학교 3학년 학생 4명은 기말고사를 하루 앞둔 새벽 몰래 학교에 들어가 준비된 시험지 원본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학생들은 수학·영어·한국지리·세계사 등 4과목의 시험지 원본을 촬영한 후 시험을 치른 것으로 드러났다. 개축공사가 진행되는 탓에 강당을 임시 교무실로 활용하는 등 교내가 어수선한 점을 이용해 범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시험지 유출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교내 시험에 대한 보안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능 등의 국가시험과 달리 교내 선생님들이 문제를 내고 보관 역시 교내에서 자체적으로 하기 때문에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일선 학교에선 담당 과목 선생님이 시험을 출제한 뒤 교무부장·교감·교장 등 다수의 결재를 거치는 탓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시험지를 유출할 수 있는 구조다.

고3 시험지 유출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수사관이 사건이 발생한 광주 한 고등학교에서 챙겨온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고3 시험지 유출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수사관이 사건이 발생한 광주 한 고등학교에서 챙겨온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태에서도 교무부장 A씨의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학교 측에선 A씨를 시험출제 및 검토와 관련한 결재라인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숙명여고 측은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A씨를) 결재라인에서 배제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다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규정하여 개선하도록 하겠다”며 “2019학년도부터 교직원 자녀가 본교에 배정되는 일이 없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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