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개혁공존 강성 친정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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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각에 이어 민정당 5역 개편이 끝남으로써 노태우 대통령의 시국수습을 위한 당정쇄신 약속이 마무리됐다. 이 같은 인사개편이 과연 「쇄신」의 효과를 가져올지는 좀더 두고볼 일이지만 노 대통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든 이번 개편으로 윤길중 대표체제는 여소야대의 구조적 약점과 특위정국의 소용돌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7개월만에 단명하고 말았다.
이번 인사는 『이 상태로 가다가는 당이 침몰하고 만다』는 위기론과 『당이 거듭 태어나야한다』는 쇄신론에 부응하면서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팀 구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당의 총력체제를 구축해 위기에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지역적으로 볼 때 민정당의 실질적 기반이 되고 있는 경북권과 서울·중부권의 인사들 중심으로 당 운영을 개편했다.
당내 최대세력이자 노 대통령의 친위부대 격인 TK(대구·경북) 그룹이 박 대표로 전면에 등장했고 여기에 이종찬 총장으로 상징되는 서울·중부 세가 접합되었다.
당 노선에서도 보수와 개혁을 공존시키려는 배려가 어느 정도 나타나 있다.
좀더 강력한 인물을 내세워 공권력의 권위를 회복하고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우익적 주장파 민정당의 환골탈태로 시대의 흐름을 싸안아야 한다는 진보적 주장을 동시에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박준규 대표는 TK의 실세인 정호용 고문이 광주 문제 등으로 전면에 나서기 어려운데 따른 차선책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이종찬 사무총장의 기용은 6공 때 참여한 신진세력을 중심으로 한 당내 개혁파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그의 정치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내년에 있을 중간평가·지자제 등 커다란 정치 행사들을 앞에 놓고 당내의 분파요소를 한데 묶어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따라서 박 대표의 등장은 노 대통령의 친정체제확립을 위한 관리자적 성격이 있다.
후계체제나 장기적 인사 포석을 내다볼 수 있는 실마리는 별로 없으며 중간 지도자급 인사들을 그저 정부와 당에 골고루 포진시켜 놓은 데 불과한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 박준규 대표의 정치력을 평가하고 기대하는 시각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소야대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이든 야당과의 제휴가불가피하고 그러자면 구 공화당 출신에다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와도 개인적 친분이 있는 박대표의 발탁이 차선책은 된다는 의미다.
이번 당직 개편을 둘러싸고 표면화된 민정당내 세력간의 활발한 연대나 제휴를 본격적인 계보형성의 예고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있다.
신 주류를 대표하는 김윤환 총무, TK사단의 정호용 고문, 비주류의 이종찬 총장 등은 빈번한 막후 접촉을 통해 개편의 방향을 다듬었으며 노 대통령은 이들의 의사를 비교적 존중했다.
그러나 이 같은 파벌 현상이 내년 봄 당헌개정후 부총재 경선제가 되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갈등과 앙금을 깊게 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이종찬 총장에 대해 당내 일각에서는 「개인의 인기관리에 너무 신경을 쓴다」는 지적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이 총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여당의 구태의연한 생리를 개탄하고 있다.
어쨌든 박준규 체제는 윤길중 체제에 비해 시국대처에 보다 강성기조를 견지하면서 노 대통령의 친정냄새를 훨씬 강하게 풍길 것으로 예상된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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