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진압이 강한 시위 불렀다"|진압 때 화염방사기 사용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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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회광주특위(위원장 문동환·평민)는 7일 광주민주화 운동당시의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윤흥정 전남-북 계엄분소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광주사태진압 과정, 발포책임 및 지휘권행사 등에 관한 증언을 들었다. <증인신문내용 요지 5면>
이날 증언에서 정씨는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지휘권과 과잉진압 책임문제와 관련, 『사태발발 초기인 18일 오후2시 당시 31사단장인 정웅 장군이 공수부대가 주둔하고있던 전남대와 조선대에와 「경찰력만으로는 진압이 안되니 도청 앞과 금남로의 시위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목숨을 걸고 시위를 막아달라」는 명령을 했다는 얘기를 당시 대대장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하고 『이 명령이 공수부대가 광주시에 나가 첫 시위를 진압하는 출동명령이 됐다』고 밝혀 공수부대의 지휘권과 강경 진압의 책임이 정웅 당시 31사단장(현 평민당 의원)에게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나선 윤흥정 증인은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과 관련, 『5월 21일 정오쯤 61훈련단장 한일수 장군으로부터 긴급전화가 와 예비군 훈련소에서 시위군중이 무기를 탈취하려 한다며 총을 쏘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쏘지 못하게 했다』면서 『그러나 한 장군은 직접 참모총장에게 연락, 똑같은 요구를 함으로써 총장이 사태가 위급함을 알고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것으로 추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또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이 『사태를 우려하고 진압에 대한 조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하고『5월 20일쯤 계엄사령관이 지휘권의 일원화를 강조했는데 그것은 이원화현상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고 발했다.
윤씨는 또 과잉진압 문제에 대해 『5월18일 저녁 광주시내의 친지로부터 계엄군이 시민을 개 패듯이 팰 수 있느냐는 항의를 받았다』면서『19일 군·관·민 대책회의에서도 각 기관장들로부터 군복을 입은 게 부끄러울 정도의 얘기를 들어 과잉진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발포명령 건의는 『31사단장이 아니라 31사단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광주사태 당시 2군사령부로부터 「어느 학교를 점령하라」는 식의 구체적인 단편명령을 받아 그대로 예하부대에 하달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어『당시 공수여단에서 사용했던 AM무전기는 31사단에서 사용했던 FM무전기와는 주파수가 달라 교신이 어려웠던 것으로 안다』며『AM무전기는 전국 어디서나 교신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이해찬 의원(평민) 질문에『그렇다』고 답변해 당시 광주에 파견됐던 공수여단이 서울지역에 있던 특전사령부와 교신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윤씨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에 내려온 일이 없느냐』는 이인제 의원(민주) 질문에『없다』고 부인하고 광주사태 초기의 과잉진압 책임은『나와 31사단장, 그리고 현장 지휘자였던 공수여단 대대장에게 있다』고 밝혔다.
윤씨는 당시 5월 21일 저녁 늦게 이희성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체신부장관으로 입각통보를 받았다며 『처음엔 반대했으나 옷을 벗으라는 것으로 알아들었다』고 밝혔다.
윤씨는 강한 진압이 강한 시위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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