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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는 데까지 해볼게요"...메달 만큼 값진 진민섭의 5위

중앙일보

입력

국내대회에서 장대를 넘는 진민섭. [중앙포토]

국내대회에서 장대를 넘는 진민섭. [중앙포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장대높이 경기가 열린 2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 경기장. 장대높이뛰기 현장 중계 마이크에 부산 사투리 말소리가 잡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대높이뛰기에 출전한 진민섭(26·여수시청)이었다.

아시안게임 육상 장대높이뛰기 출전 #부상에도 포기 않고 5m40㎝ 기록해 #2연속 메달 실패했지만 빛나는 투혼

“뛸 수는 있는데 좀 절뚝거릴 것 같아요.” “해보는 데까지 해볼게요.”

4년 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이 종목 동메달리스트인 진민섭은 첫 높이로 출전 선수 13명 가운데 가장 높은 5m40㎝를 신청했다. 5명의 선수가 그보다 낮은 높이에서 탈락했고, 드디어 5m40㎝ 시기가 됐다. 자신의 순서가 되자 진민섭은 뭔가 불편한 자세로 앉은 채 스트레칭을 반복했다. 그리고 1, 2차 시기에서 연거푸 바를 넘는 데 실패했다.

마지막 3차 시기에서 진민섭은 기어코 바를 넘는 데 성공했다. 5m40㎝를 넘지 못한 2명의 선수가 또 탈락했다. 남은 선수는 그를 포함해 5명. 다른 선수들은 5m50㎝에 도전하는데, 5m40㎝를 힘겹게 넘은 진민섭은 5m60㎝를 신청한 것이다. 결국 진민섭은 세 차례 시기를 모두 실패했다. 3차 시기에 실패한 뒤엔 매트 위에 쓰러진 체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동메달을 딴 임은지(29)와 동반 메달을 기대했던 터라 아주 아쉬웠다.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으로 진민섭을 만나러 갔다. 때마침 그곳에는 남자 4X100m 계주 예선을 마치고 나온 김국영(27·광주광역시청)이 있었다. 김국영은 남자 200m 결선에서 20초59로 4위를 해 아쉽게 메달을 놓쳤지만, 계주에선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김국영에게 진민섭 얘기를 꺼내자 “허벅지에 부상이 있다고 해서 못 뛸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뛰고 말았다”고 말했다.

4년을 준비한 아시안게임, 그것도 ‘육상 불모지’인 한국의 메달 기대주에게 태극마크의 무게는 부상을 딛고 뛰어야 할 만큼 무거웠다. 경기가 끝난 뒤 1시간가량 기다려도 진민섭은 믹스드존에 나타나지 않았다. 현장 관계자에게 그의 행방을 물으니 “메디컬 문제가 있어서 그쪽으로 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두 대회 연속 메달에 실패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그의 순위 5위는 메달만큼이나 값졌다. 또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그의 투혼이 다음 기회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자카르타=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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