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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요즈음 나라 안이 쓸모 없이 시끄러운 것 같다.
무엇 때문에 시끄러운지는 알고 있지만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난리를 쳐야하는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이제 그만 하자.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한달만 지나가면 또 한해가 지난다. 위대한 국민답지 않다.
사상 최대·최고의 올림픽도 전 인류의 부러움 속에 무사히 잘 치렀고 지난해 6월 항쟁·노사 분규도 슬기롭게 잘 헤쳐 나왔다.
이러한 우리답지 않게 요즘은 이상하다. 게다가 요즈음의 여론은 치졸하고 성급할 정도로 대세에 민감한 것 같다.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은 과감히 버려야하는데 이 작은 것들이 흡사 국민의 뜻으로 오인되어 참된 국민의 뜻인 「큰 것」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
TV·신문은 그렇게 보도할 것이 없는가.
온 지면을 5공 비리·전두환씨 부부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흡사 이런 것만을 집중 보도해야 어용 언론이라는 소리를 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5공 비리와 관련된 인사, 전씨의 친·인척이 모두 구속되었다.
전씨 부부도 귀향살이나 다름없는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그의 과거 정치 행적이 우리 국민에게 끼친 악영향을 생각하면 구속해야 하겠지만 구속만이 능사가 아니다.
5공 때 그 혹독한 고문과 탄압적인 구속도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았는가.
보복에 가까운 사법적인 처리는 5공 청산이라는 차원에서 벗어나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같은 우려 때문에 또는 두려워서 국민들이 전씨를 용서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큰마음으로 용서하자.
36년 동안. 우리를 압제했던 일본도, KAL기를 폭파한 소련도 용서했던 우리 국민들이 아닌가.
또 피해자들 보상 운운하는데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 정성을 다해 그들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 하자는데 이의가 없다.
다만 피해자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몇푼의 보상 때문에 그 고생한 것이 아니잖은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민주화가 바로 희생자들에 대한 참된 보상이자 결실이라 믿는다.
전씨에게 너그럽게 속죄할 장소를 제공해주자. 관대하게 용서해주자.
나도 지독히 5공화국을 미워했고 처리 문제에 관한 한 강경 입장이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피해를 가장 많이 본 광주 시민들이 망월동 묘지에 적어놓은 글을 읽고 내가 부끄러워졌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란 글귀였다. <김기수 (경북 경주시 황남동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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