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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 익히려 가끔 외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26)가 2일 검찰에 출두, 조사를 받음으로써 지난 1월 기자회견 이후 11개월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는 지난 6월 이후 김에 대한 사법처리를 검토해왔으나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데다 국정감사 등 정치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지금까지 미루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앞으로 3∼4차례 더 조사를 벌인 뒤 연내에 금에 대한 기소여부를 결정지을 예정이다.
검찰은 그 동안 ▲구속기소 ▲불구속기소 ▲공소보류 등 세 가지 신병처리 방안을 놓고 검토한 결과 불구속 기소키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황>
김은 현재 국가 안전기획부의 안전가옥에서 여자 수사관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한국생활을 익히기 위해 가끔 외출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월17일 서울 올림픽 개회식 때 직접·참관했었다는 일부 외신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김이 참관을 희망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숙소에서 TV를 통해 개회식 장면을 구경했다는 것이다.
한 동안 운동부족으로 체중이 6kg쯤 불어 고민했으나 다이어트 등으로 체중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써 요즈음은 지난해 12월 한국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54kg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V시청과 독서가 일과인 김은 TV는『전원일기』등 홈 드라마와 사극을 즐겨 보고 있다는 것.
특히 홈드라마를 시청할 때엔 배에 있는 가족들 생각 때문에 이따금 눈물을 홀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은 줄곧 여자수사관들과 한 몸처럼 생활해와 담당 수사관을「언니」라고 부르며 몹시 따르고 좋아하고 있다는 것. 검찰은 특히 이 때문에 김을 구속 수감할 경우 구치소 독방에서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켜 자해나 심경변화를 일으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은 평소 작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고 비교적 정확히 발음이나 억양을 구사하지만 목청을 높일 때엔 전혀 우리말 같지 않은 억양을 사용해 이상하게 들릴 때도 있다는 것.
김은 특히 두뇌회전이 빨라 처음 해보는 일도 금방 익숙해지며 일본어는 일본인처럼 유창하고 중국어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외국어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 지난 2월 일부 대학가에「KAL기 폭파사건은 현정권의 조작으로 안기부·보안사요원들이 자행한 것」이란 내용의 대자보와 유인물이 나돈다는 보도를 보고는『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나와 대면시켜 직접 확인해주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며 수사관들에게 어이없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는 것이다.

<법적처리>
검찰은 당초1백15명에 이르는 피해자 유족들의「법 감정」을 감안, 구속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구속할 경우 구치소나 교도소 내에서의 신병안전을 보장키 어려워 제외시켰다.
만일 김이 수감자체를 자신에 대한 처형을 위한 것으로 판단, 자살이라도 하게된다면 이 사건을 둘러싼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데다 북한의 악선전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불구속기소와 공소보류 등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해왔었다.
공소보류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피의자에 대해 검사가 범행의 동기나 수단 및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 기소를 보류하는 제도(국가보안법 제20조)로 김신조씨 등 전향간첩 처리에 활용돼 왔다.
검찰은 그러나 김이 저지른 범죄의 죄질이 중하고 유족 및 국민들의 법 감정도 고려해야 하는 데다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일부 대학가에 나돌던 조작설 등 의혹을 오히려 가중시킬 우려마저 있어 원칙적인 처리를 강조해 결국 불구속 기소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구속 기소하게 되면 김에게는 ▲국가보안법 제4조 ▲형법 제164조 및 172조1항 ▲항공기 운항안전법 제4조·12조 등이 적용돼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따라서 김이 불구속 기소된다 해도 중형선고는 피할 수 없지만 법정구속 되지 않는 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게되며 확정 판결직후 사면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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