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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인, 트럼프와 끝나지 않은 전쟁, "장벽 뒤에 숨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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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25일 작고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AP,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25일 작고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AP,EPA=연합뉴스]

지난 25일 작고한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이 사후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결을 계속하고 있다. 매케인 상원의원은 27일 공개된 유언을 통해 “장벽 뒤에 숨어선 미국의 이상과 위대함을 약화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일방주의를 일갈했다.

27일 공개 작별 성명 "종족 대결을 애국심 혼동 안 돼" #장례식 추도사 부시·오바마에 부탁, 트럼프 초청 안 해 #트럼프, 이틀 지각 애도 성명, '영웅' 표현 끝까지 거부 #백악관 조기 25일 달았다, 27일 오전 내렸다가 재게양

매케인 상원의원 27일 가족 대변인이 대신 낭독한 '미 국민에 대한 고별 성명'에서 “우리는 ‘피와 땅(나치즘·백인우월주의 슬로건)’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공화국과 이상을 가진 나라의 시민”이라며 “역사상 어느 때보다 압제와 빈곤으로부터 더 많은 사람을 해방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부와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세계 곳곳에 분노와 증오, 폭력을 뿌리는 종족 대결을 애국심으로 혼동할 때 우리의 위대함은 약해진다. 우리가 벽을 부수지 않고 벽 뒤에 숨을 때, 우리 이상이 변화의 위대한 동력임을 신뢰하기보다는 의심할 때도 위대함은 약해진다”고 덧붙였다. 국내적으로 백인우월주의와 같은 분열주의, 대외적으로 미국 일방주의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릭 데이비스 존 매케인 상원의원 유족 대변인이 27일 기자회견에서 매케인 의원 사전에 작성한 '미 국민에 대한 고별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AP=연합뉴스]

릭 데이비스 존 매케인 상원의원 유족 대변인이 27일 기자회견에서 매케인 의원 사전에 작성한 '미 국민에 대한 고별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AP=연합뉴스]

그는 이어 “우리 3억 2500만명 국민 저마다 각자 목소리를 높여 공론의 장에서 논쟁하고 경쟁하며, 때론 서로를 비난하지만 언제나 서로의 이견보다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통합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조국을 사랑한다는 믿음을 기억하고 공유하면 어려운 시대를 극복하고 과거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며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 끝으로 “현재의 어려움에 절망하지 말고 언제나 미국의 약속과 위대함을 믿어라. 왜냐하면 세상에 아무것도 필연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라며 “미국인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으며, 역사로부터 숨지 않았다. 우리는 역사를 만든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같은 매케인의 특별한 고별 편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전 포로 출신인 자신을 ‘전쟁 영웅이 아니다’고 자신을 비난한 이후 수년간 벌어진 둘 사이 전투의 장엄한 종결부(Coda)”라고 평했다.
매케인 상원의원의 ‘사후’ 강력한 뒤끝은 편지만이 아니다. 자신의 장례식에 2000년 대선 경선과 2008년 본선 각각 경쟁자였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초청해 추도사를 부탁했지만 같은 공화당에 현직인 트럼프 대통령은 초청하지 않았다. 대신 현 행정부에선 마이크 펜스 부통령만 초청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 비판적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작고한 데 대해 지각 성명을 내면서 백악관의 조기도 25일 밤 사망직후 게양됐다가 내려진 뒤 27일 오후에서야 다시 게양됐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 비판적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작고한 데 대해 지각 성명을 내면서 백악관의 조기도 25일 밤 사망직후 게양됐다가 내려진 뒤 27일 오후에서야 다시 게양됐다.[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도 매케인 의원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27일 오후 사망 이후 이틀이 지나 낸 지각 추모 성명에서도 끝까지 영웅(Hero)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다. 그는 25일 사망 당일 새러 샌더스 대변인을 포함한 참모들이 ‘영웅’표현이 포함된 애도 성명을 내자는 제안했지만 거부했다. 또 미 의회가 초당적 요구한 백악관 조기 게양도 25일 저녁 잠시 게양했다가 27일 오전 통상적인 국기 게양으로 복귀했다가 오후 공식 조기 게양 포고령에 서명한 후 다시 달았다. 이날 기자들이 케냐 대통령과 정상회담 기자회견 자리 등에서 매케인 상원의원 별세에 대한 입장과 왜 전쟁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를 묻는 말에 일절 답변을 거부했다.

지각 성명에선 “우리의 정책과 정치적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조국에 대한 봉사를 존경하며, 이를 예우하기 위해 장례식 때까지 조기 게양을 위한 포고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오는 금요일 의회에서 열리는 영결식에 펜스 부통령에게 참석해달라고 부탁했고, 매케인 의원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유해 운구에 군 수송기 이용 및 군대의 운구, 군악대 지원 등을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존 켈리 비서실장,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행정부를 대표해 장례 행사에 참석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조국에 대한 봉사를 존중한다”는 표현 외에는 정부 차원의 장례의전 지원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성명에 그친 셈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평은 이날 저녁 복음주의 교단 지도자들과 만찬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과 기도가 유족과 함께하고 있다. 존 매케인 의원이 조국을 위해 한 모든 일에 크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기자들과 숨바꼭질 끝에 이틀 만에 낸 육성 반응이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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