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나는 배고프다, 고로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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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19쪽, 8500원

당신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아멜리 노통브는 이 질문에 한 단어로 답한다. '배고픔'. 책은 이 답에 대한 200여 쪽짜리 부연 설명이다. 오세아니아의 섬 바누아투를 '배고픔이 없는 나라'로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식량과 자원이 사방에 널려있는 이 나라에서 생산은 필요없다. 손만 뻗으면 탐스러운 야자열매와 바나나가 쥐어지고, 바다에서는 원하거나 말거나 기막힌 맛의 생선을 그러모을 수 있다.

아무런 노력 없이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나라다. 노통브는 바누아투인의 입을 빌려 이곳을 "끔찍하다"고 말한다. 결핍에서 비롯된 욕구가 지워진 삶이 과연 살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신의 배고픔을 풀어놓는다. 그가 말하는 배고픔은 단순한 허기를 넘어선다.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요, "스스로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어떤 동력"이다. 자신을 "육화된 배고픔"이라 단언하고는 그 증거로 유년 시절부터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집착한 대상들을 나열한다. 달디단 과자, 알코올, 물에서부터 여성적 아름다움, 애정, 환락, 책, 극단의 배고픔을 위한 거식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종착역으로 '글쓰기'를 말한다.

한 인터뷰에서 "'배고픔의 자서전'의 주인공은 내가 모델이다. 나는 항상 배가 고프다. 모든 것은 사실이며, 모두 내게 일어난 일들"이라 밝힌 것처럼, 책은 소설보다 자서전에 가깝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일본.중국.뉴욕.방글라데시로 유랑하듯 옮겨다닌 노통브 자신의 성장기다. 그의 대표작인 '살인자의 건강법'이나 '적의 화장법'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허를 찌르는 기발한 스토리와 언어로 벌이는 결투 같은 대화체는 맛볼 수 없다. 대신 이 책은 노통브가 자신과 같은 부류, 즉 '배고픔'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눠주는 "신(神)적인 음식", 초콜릿이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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